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1박 12일간 히말라야 트레킹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부탄을 들렀다. 소설가 박범신도 합류했다. 박씨는 문 전 대표의 근황을 전하면서 "서울에 사는 게 영혼에 기름기가 끼는 것인데 기름기를 덜어냈을 것"이라고 했다.
짧게 보면 야당의 분당(分黨)과 4월 총선의 역전, 조금 길게 보자면 2012년 대선 패배부터 내년 대선을 준비하는 지금까지 문 전 대표의 '서울살이'는 고단과 피곤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등산조차 마음대로 즐길 수 없었을 테니, 이번 히말라야 트레킹은 재충전 기회가 됐을 것이다.
문 전 대표의 부탄 방문에 아니나 다를까 정치권에서는 바로 '행복한 나라' 이야기가 나왔다. 부탄은 1인당 GDP(국내총생산) 2000달러인 최빈국(最貧國)이지만 2010년 영국 신경제재단(NEF)의 국가별 행복 지수 조사에서 1위를 했다. 이 나라는 '빨리, 더 많이'를 추구하는 GDP 대신 국민총행복(GNH)을 사회 발전 지표로 채택했다. 문 전 대표와 동행했던 박씨는 4일 트위터에 '국민 행복 지수 선진국인 부탄에서 나는 적게 먹고 많이 걸으려 애썼고, 그(문재인)는 더불어 행복해지는 길에 대한 모색에 몰두했다'고 전했다.
잠시 쉬러 간 여행자는 그렇게 봐도 된다. 하지만 정치가로서 부탄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이런 '구름 속의 부탄'만 봐선 안 된다. 2010년 부탄의 지그메 틴레이 총리가 한국에 돈 벌러 온 부탄 산업 연수생들과 서울에서 만났다.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라고 하는 연수생들은 고국에서 온 총리 말에 귀 기울였다. 틴레이 총리는 "한국이 어떻게 가난한 나라에서 잘사는 나라가 됐는지 배워서 귀국하라. 한국인의 정신을 배워서 부탄을 잘사는 나라로 만들어보자"고 했다. 민속 의상을 입은 연수생들은 총리의 연설에 눈물을 흘렸다. 이 자리에 동석했던 외교부 당국자는 "저개발 국가들은 한국을 배우러 오는데, 한국은 자학(自虐)에 빠져 있다"고 했다.
한국도 한때 '행복한 나라'였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는 갓 만든 음식을 이웃과 나눠 먹으며,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고 열심히 공부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던 수십 년 전 모습이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복지의 스웨덴과 행복의 부탄을 무슨 유행가처럼 따라 부르며 '흙수저' '헬조선'의 무기력에 빠져 속으로 곪아가고 있다.
여행자 눈으로 보면 1999년까지 텔레비전조차 없던 나라, 해가 지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하루 일을 이야기했던 왕정(王政) 국가가 왜 2008년부터 의회민주주의를 도입했는지 알 수 없다. 미국 명문대를 졸업한 총리가 한국에 돈 벌러 온 노동자들에게 왜 눈물로 '한국을 배우라'고 했는지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 전 대표는 여행자가 아니라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보겠다고 나선 정치인이다. 부탄에서 돌아온 그가 들려줄 '행복의 나라' 이야기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