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과정에서 잇단 막말로 '필리핀 트럼프'로 불렸던 로드리고 두테르테(71) 대통령 당선인이 30일(현지 시각) 수도 마닐라 말라카낭 대통령궁에서 취임식을 갖고 16대 대통령으로서 6년 임기에 들어갔다. 이날 취임식에는 신임 각료와 행정·사법·입법부 주요 인사, 외교사절단 등 600여 명이 참석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범죄 근절을 공언했다. 그는 "거리에 들끓는 범죄로 필리핀이 무너지고 있다"며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마약이 한 개인과 가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알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범죄에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범죄와의 전쟁’을 내걸고 필리핀 대선에서 승리한 로드리고 두테르테(가운데) 대통령 당선인이 30일 마닐라의 말라카낭 대통령궁에서 취임식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날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

[필리핀 투테르테 대통령 취임 "범죄와의 전쟁 시작"]

그는 다바오 시장 시절 범죄 혐의자를 사법 절차 없이 즉결 처형한 것 등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을 의식한 듯, "범죄와 싸우는 내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만, 전직 검사이자 법률가로서 무엇이 적법하고 아닌지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적법 절차와 법치를 준수한다는 나의 원칙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내 일은 내가 신경 써서 할 테니, 당신들은 당신들 일이나 알아서 하라"고도 했다.

두테르테는 대선 과정에서 '6개월 이내 범죄 근절'을 공언했으며, 당선인 시절에도 사형제 부활, 살인·마약·강간 등 강력 범죄자 즉결처형 허용 등을 예고했다. 치안 분야에선 '두테르테 효과'가 벌써 나타나고 있다. 두테르테 당선 이후 한 달 보름 만에 필리핀 경찰은 마약 매매 용의자 59명을 사살했고, 수도권 일대에서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마약범 300여 명이 경찰에 자수했다.

그는 또 취임사에서 "국가지도자와 사법 시스템, 공무원 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며 정치 개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미 체결된 국제조약, 반군과 합의한 평화 협정 등을 준수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베니그노 아키노 전 대통령은 이날 두테르테에게 권좌를 내주고 물러났다. 독재자 마르코스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암살당한 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의 아들인 그는 최근 한 대학 연설에서 마르코스 계엄 시절을 회고하면서 "독재자의 지배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