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하고 어지럽다. 무리수를 둔 영화."

"장르의 관습을 벗어난 신선한 영화다."

지난 14일 이경미(43) 감독의 '비밀은 없다' 언론 시사회가 끝난 뒤 취재진 반응은 눈에 띄게 갈렸다. 이런 반응은 23일 영화 개봉 후에도 이어졌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이 영화에 최저점(1점)과 최고점(10점)을 준 네티즌이 각각 25%를 차지한다.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재밌다'는 평에서부터 '이거 본 시간이 아깝다'는 평이 포털 사이트와 영화 온라인 게시판, 트위터에 돌아다닌다. 이런 반응 때문인지 이 영화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다. 26일까지 관객 수는 19만3729명. 개봉작의 첫 주 성적으로는 초라하다.

◇황당하고 어지럽다 vs 신선하고 강렬하다

'비밀은 없다'는 전형적 스릴러처럼 보인다. 국회 입성을 노리는 앵커 출신 정치인 종찬(김주혁)과 그의 아내 연홍(손예진)의 딸이 선거를 보름 앞두고 실종된다. 딸을 찾으려고 애쓰던 연홍은 선거에만 정신이 쏠린 남편과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분노하며 홀로 딸의 흔적을 쫓기 시작한다. 딸을 찾아야 하는 어머니의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연홍의 내면 의식 흐름을 쫓아가는 영화에 더 가깝다. 장르의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어떤 이들에겐 불편하고, 또 다른 이들에겐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손예진은 이 영화에서 중학생 딸을 둔 엄마 연홍 역을 맡았다. 집요하고, 의심 많고, 잘 흥분하는 데다 똑똑하지도 않은 캐릭터를 열연하며 낯선 얼굴을 보여준다.

[배우 손예진은 누구?]

'미쓰 홍당무'로 장편 데뷔한 이경미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미쓰 홍당무'는 관객 54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지만, 당시 평단에서 호평을 받았다. 세상에 맞서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여자들을 사랑스럽게 그려낸 이 작품은 비호감 캐릭터와 뚱한 유머로 많은 팬을 얻었다. 이런 특징은 이번 작품까지 이어졌다. 경상도 지역 국회의원으로 출마한 남편을 둔 연홍은 전라도 출신이라서 선거 캠프에서 눈총을 받는 신세다. 잃어버린 딸을 찾고자 자해와 협박을 일삼는 그를 경찰마저도 외면한다. 극단적이고 날이 선 캐릭터에서 "이해할 수 없다"와 "사랑스럽고 애틋하다"는 반응으로 갈린다. 영화 중간에 화면과 맞지 않게 튀어나오는 효과음이나 삽입곡, 뮤직비디오 형식의 화면 역시 마찬가지로 "어지럽다"와 "강렬하다"는 양극단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갑론을박 영화평, 흥행엔 도움?

올해 상반기 개봉한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탐정 홍길동')부터 '곡성' '아가씨' '비밀은 없다'까지 평단과 관객은 영화를 보고 난 후 각각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런 갑론을박이 '탐정 홍길동' '비밀은 없다'에는 악재로, '곡성'과 '아가씨'에는 호재로 작용했다. 예를 들어 '곡성' 은 인과관계가 불확실하고 모호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관객들은 이를 추리하고 논쟁을 벌이는 데 오히려 관심을 가졌다.

한 제작자는 '비밀은 없다'에 대해 "모든 사람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만드느라 여기저기 손질하다 보면 둥글둥글한 영화만 나오게 된다. '검사외전'처럼 최근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대부분 그렇다. 각이 살아 있는 영화는 모든 사람이 좋아하지 않겠지만, 새로운 시도를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정신과 의사인 하지현은 '비밀은 없다'에 대한 네티즌들의 혹평을 보고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최근 몇 년간 '천만 영화'를 주로 봐온 관객들이 조금 우려가 된다. 단순, 명쾌, 감동 폭발에만 익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