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자녀를 둔 주부 이모(47)씨는 다른 학부모들과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입시 정보를 주고받았다. 지난 3월 이씨는 다른 학부모가 대화방에 올린 모의고사 관련 정보에 잘못된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이씨는 대화방에서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다.

학부모들은 이씨가 없는 다른 단체 대화방을 만들었다. 또 이씨만 빼고 점심 모임을 열고서 단체사진을 찍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지정했다. 이씨는 자신만 따돌리고서 다른 학부모들이 대학 입시설명회에 다녀온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고, 아무 조건 없이 ‘백기(白旗) 투항’했다. 이씨는 자신이 정보의 정확성 문제를 지적한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했고, 그제야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다시 초대받을 수 있었다.

최근 스마트폰 대화방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소외돼 고민하는 중·장년층이 늘고 있다. 청소년 사이에서 학교 폭력의 일종으로 여겨지던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 등에서 특정인을 괴롭히는 것)’ 대상이 중년은 물론 노년층으로까지 확산한 것이다. 카톡방이나 ‘밴드’ 같은 모임에서 특정인을 따돌리고 괴롭히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면서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의 또 다른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카카오톡에서는 주로 사이버 불링 피해자를 초대하지 않은 별도의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괴롭힘이 이뤄진다. 피해자가 있는 대화방에서 자신들끼리 별도 채팅방에서 나눈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정보를 공유해 피해자가 따돌림당하는 것을 알도록 한다.

소셜미디어 ‘밴드’를 통해 동창회나 동호회 등의 모임 일정과 소식을 공유하는 중·장년층이 많다. 밴드에서의 사이버 불링은 특정인을 강제로 탈퇴시키거나, 탈퇴한 사람이 다시 가입하지 못하게 차단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피해자들은 밴드에서 모임 일정 정보 등을 얻지 못해 결국 현실 모임에서도 소외된다.

최근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같은 동(棟) 주민들로 이뤄진 밴드 모임에 다시 가입시켜달라는 한 주부의 호소문이 붙었다. 이 주부는 A4 용지에 “밴드에서 탈퇴한 지 하루 만에 아파트 관리에 대한 건의사항이 있어 재가입을 요청했지만, 밴드장이 가입을 시켜주지 않는다”고 적었다. “(다른 주민이)아파트 상가에서 저를 욕하는 게 듣기 싫다”, “스마트한 세상 좋지만, 밴드에서 저를 왕따시키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밴드장(밴드 운영자)' 눈 밖에 난 사람이 따돌림의 대상으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아 밴드장에게 선물을 주는 등 환심을 사려는 이용자도 있다. 사이버 불링을 막기 위해 일부 밴드는 밴드장을 돌아가면서 선출하는 규칙을 정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최근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사이버 불링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집단주의 문화에 익숙한 세대여서 사회적 관계가 단절될 때 받는 충격이 더 크고,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친구나 인간관계를 맺기 어려워 생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장년층의 소셜 미디어 사용은 오프라인에서 장기간 지속한 관계를 온라인으로 옮겨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사이버 불링으로 소외될 경우 피해자는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경제 불황으로 베이비붐의 은퇴가 가속한 상황에서 중장년층은 사이버 불링으로 인한 심리적 소외감을 젊은 세대보다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