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현 특파원

영국은 물론, 유럽연합(EU)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조 콕스(41·노동당) 의원의 피습 사망 사건을 계기로 잠시 중단됐던 영국의 EU 잔류·탈퇴 캠페인이 19일(현지 시각) 다시 점화됐다. EU 경제의 17%, 인구의 13%를 차지하고 있는 영국의 EU 탈퇴는 다른 회원국의 이탈로 이어져 EU 붕괴를 불러올 수도 있다. 전 세계가 영국 유권자들의 선택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당초 콕스 의원 피습 사건으로 투표 날짜가 연기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으나 투표는 오는 23일 예정대로 치러진다.

국제사회는 영국의 EU 잔류를 호소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8일 연례 영국보고서에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영국 경제는 내년에 즉각 경기 침체에 빠지고, 최악의 경우 오는 2019년 국내총생산(GDP)의 5.5%가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자리·임금이 줄고, 물가는 폭등할 것이라고도 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브렉시트는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걱정거리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경제장관은 르몽드지에 "브렉시트는 영국을 세계와 동떨어진 섬나라로 전락시킬 것"이라고 했다.

콕스 의원 사건을 계기로 영국 유권자들의 표심은 'EU 잔류' 쪽으로 흐르는 분위기다. 지난달까지 잔류 쪽이 우세했던 여론조사 결과는 작년 이민자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는 영국 정부 발표 이후 탈퇴 우세로 돌변했다가 선거 막판에 다시 잔류가 앞서는 형국이다.

여론조사업체 서베이션은 이날 "콕스 의원 사망 이후인 17~18일(현지 시각) 유권자 1000여명을 상대로 한 전화조사 결과, 잔류 지지가 45%로 탈퇴(42%)를 앞섰다"고 밝혔다. 불과 3일 전 이 업체 조사에선 탈퇴가 3%포인트 높았다. 선데이타임스가 '유고브'에 의뢰한 결과도 잔류(44%)가 탈퇴를 1%포인트 앞섰다. 전날 2%포인트 열세를 뒤집었다. 앤서니 웰스 유고브 여론조사 책임자는 "막판에 '현상 유지'를 원하는 유권자 심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잔류 진영을 이끌고 있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19일자 신문 인터뷰·기고에서 "영국이 미래를 결정할 분수령을 맞고 있다"며 "브렉시트는 '편도(one-way) 차표'로 한번 탈퇴하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브렉시트 땐 경제가 불확실성에 빠져 10년 이상 고통받게 될 것"이라며 "위험을 알면서도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무모한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탈퇴하는 것으로 결정이 나더라도 총리직은 계속 수행하겠다"고 했다.

반면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과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 등 탈퇴 측은 "EU에서 떠나는 날 영국은 '진보의 횃불'이 될 것"이라며 "(관료주의적인 EU에 맞서) 민주주의를 향해 투표해 달라"고 말했다. 탈퇴 측은 "영국은 EU에서 나와야 국내총생산(GDP)도 늘고 30만개 이상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요 언론도 입장이 갈리고 있다. 일간 더타임스는 18일자 1면 톱으로 '왜 잔류가 영국에 최선인가'라는 제목과 사설을 통해 EU 잔류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더타임스는 "브렉시트 땐 경제적 위험성이 커진다"며 "영국은 EU 안에서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지난 16일 사설에서 "영국은 EU 잔류에 투표해야 한다"면서 "영국은 1973년 유럽경제공동체(EEC·EU의 전신) 가입 이후 1인당 GDP가 프랑스·독일보다 빠르게 성장했다"고 했다. 반면 대중지 '더선'은 최근 브렉시트 지지를 선언했다.

콕스 의원 추모와 세계 주요 인사들의 유가족 위로도 계속 이어졌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콕스 의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콕스 의원의 이타적인 희생정신이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탈퇴 지지세가 강한 이스트본 등에서도 브렉시트 찬반 여부를 떠나 콕스 의원을 애도하는 글이나 헌화가 이어졌다. 폭스 의원 추모 기금에는 하루 만에 시민 1만6000여명이 동참했다.

런던서… '영국의 EU 잔류'를 위한 키스 -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를 나흘 앞둔 19일(현지 시각) 유럽 전역에서 영국의 EU 잔류를 기원하는‘키스 마라톤 이벤트’가 열렸다. 이날 영국 런던 의회 광장에서 각각 유럽연합과 영국을 상징하는 커플들이 입을 맞추고 있다.

[[키워드 정보] 영국의 EU 탈퇴? 브렉시트 15문 15답]

콕스 의원 살해범 토머스 메어(52)에 대한 사법처리도 속도를 내고 있다. 런던 웨스트민스터 형사법원은 18일 메어를 법정으로 불러 신원 확인 절차를 진행했다. 메어는 "이름이 뭐냐"는 법원 직원 질문에 "내 이름은 '반역자에게 죽음을, 영국에 자유를'이다"고 말했다. "메어는 재차 이름을 물었을 때도 같은 말을 반복했고, 주소와 생년월일을 묻는 질문에는 아예 대답하지 않았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법원은 메어 변호인 측에 "메어에 대한 정신과 진단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경찰 조사 결과, 메어는 범행 당일 콕스 의원이 지역구민 만남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가, 콕스 의원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공격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짧게 자른 소총과 사냥용 칼을 사용했다. 땅에 쓰러진 콕스 의원을 여성 보좌관이 끌어안고 "조, 제발 일어나세요"라고 했지만 콕스 의원은 "일어날 수가 없어. 너무 아파"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메어의 집을 수색해 극우·백인우월주의와 관련된 다수의 증거물을 확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