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10명 중 3~4명이 1년에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는 독서 빈국(貧國) 대한민국. 조선일보가 지난 3월부터 연재한 '읽기 혁명' 시리즈는 "책 안 읽는 나라는 미래도 못 읽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독서가 개인의 학업 성취도, 취업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도 직결된다는 점을 짚었고, 디지털 매체보다 종이 책을 읽을 때 기억력·이해력이 높아진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보여줬다. 아빠가 책을 읽어준 아이일수록 성적도 높고 정서적 문제도 덜 겪는다는 기사는 많은 학부모의 호응을 얻었다.
'읽기 혁명' 시리즈 1부를 마치며 진보·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조희연 서울교육감과 우동기 대구교육감이 우리나라 독서 교육에 관해 대담(對談)을 나눴다. 지난 8일 오후 조선일보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두 교육감은 "독서 교육에는 좌우 이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며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 '알파고 시대'에 아이들이 살아갈 힘은 결국 독서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책을 읽지 않는 풍토, 우리 사회 지적 수준과 직결되는 거 아닌가.
조희연 그간 우리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기술적 진보'의 관점에서만 봐왔다. 그런데 조선일보 '읽기 혁명' 시리즈를 통해 우리가 천박한 디지털 미디어 시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반성하며 보게 됐다. 스마트폰, 컴퓨터 등 디지털 매체를 통한 읽기는 단문 중심의 즉흥적인 읽기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지 못한다. 독서는 인간의 지적 역량을 발전시키는 기본 교육의 영역이기 때문에, 최근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독서 교육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본다.
우동기 독서의 중요성을 모두 알고 있지만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최근 알파고가 인공지능 시대라는 화두를 던져줬고, '강남역 살인사건' 같은 사회 병리적 사고가 연달아 터지고 있다. 이 같은 시대에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결국은 독서다. 대구는 2005년부터 '아침독서 10분 운동'을 해오고 있다. 지난해 대구가 정서 행동 관심군 학생 비율, 인터넷·스마트폰 과다사용 청소년 비율, 학교 폭력 발생 비율 등이 전국에서 가장 낮게 나왔다. 아침 독서 10분이 10년간 축적된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알파고 시대'의 교육, 책 읽기가 해법이 될까.
조 우리는 아이들에게 '공부 기계'가 되라고 얘기하고 있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기계처럼 공부만 하라고. 1960~70년대 '추격 산업화' 시대에는 서양의 앞선 지식을 무조건 암기하고 따라잡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앞으로 이런 기계적인 공부는 사람보다 기계가 더 잘하게 된다.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간적인' 미래 역량이 무엇인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지식을 탐구하는 능력이다. 독서 교육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독서는 '만남'이다. 이미 존재하는 앞선 지식·지혜 혹은 그걸 갖고 있는 인물과의 만남. 그 속에서 현재의 '나'가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 독서다. 서울교육청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에세이를 쓰는 '삼위일체형' 독서 교육을 권장한다. 혼자서 책을 읽는 것에서 나아가 친구들이나 부모님, 이웃과 함께 책을 읽고 생각과 지혜를 나누는 과정에서 협력적·비판적 독서가 가능해진다.
우 동의한다. 인공지능이 결코 따라올 수 없는 것이 공감(共感) 능력일 것이다. 독서는 공감이다. 책 속의 인물에 공감하고, 같은 책을 읽은 친구와 서로 느낀 점을 나누는 것이다. 최근에 인성교육진흥법이 통과되는 등 인성 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보통 인성 교육이 공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대구에서는) 인성 교육의 전략으로 읽기·쓰기·말하기를 선택했다. 한 책을 읽고 토론하거나 책쓰기 동아리를 하면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는 능력이 자연히 길러진다. 협력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학부모들도 거부감이 없다. 책 읽기는 입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생님들도 가욋일로 여기지 않는다.
―학교뿐 아니라 가정에서 책 읽는 분위기가 확산되도록 하려면.
우 우리 교육청에서 수요일·금요일마다 집에 일찍 들어가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며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것을 하도록 했다. 처음에 부모님들이 힘들어했다. 대화할 소재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말 한번 잘못 꺼냈다가 잔소리가 돼 더 싸운다고 하더라. 여기서 필요한 게 '책'이라고 봤다. 엄마·아빠·자녀가 같은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학부모들도 관심이 굉장히 많다. 독서교육지원단을 모집했는데 자원봉사인데도 엄마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아이들이 표현력이 떨어져서 대입 면접에 불리하다는 얘기가 돌자, 엄마들이 독서 토론 교육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조 젊은 아빠들에게 '책 읽어주는 아빠'라는 경험을 강권한다. 어린 시절에 스킨십하면서 아빠와 아이가 함께 책을 읽으면 평생 따뜻한 부자 관계가 지속될 것 같다. 이걸 어린 시절에 안 하면 나중에는 정서적인 교류를 하기가 어렵다. 또 가정에서 아빠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우리 사회 문화를 바꾸는 획기적인 방법인 것 같다. 함께 책 읽는 관계라는 것은 수평적인 관계다. 권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가정 문화도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다. 최근에 서울교육청에서 '책 읽어주는 아빠' 연수를 했다. 평일 저녁 시간에 했는데 200명 넘는 아빠들이 퇴근길에 찾아왔더라. 이렇게 뜨거운 호응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이미 우리 사회에 변화가 찾아오고 있는 것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독서 문화를 확산시키려면.
우 물꼬는 트였다고 본다. 알파고 충격과 학생부종합전형 확대, 자유학기제 전면 도입 등 여러 요인이 학부모들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사회적 공감대도 만들어지고 있다. 대구교육청이 매년 책 축제를 혼자서 치러왔는데, 올해 서울교육청이 독서 교육에 힘을 싣는 것을 보고 '확산될 수 있겠다' 싶었다. 학교 공간도 독서 친화적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신·개축하는 학교부터 학생들이 어디서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복도와 계단에 푹신한 소파를 두는 등 독서 공간으로 꾸미고 있다.
조 경기 광명중은 동문회 기부를 받아 1년 내내 학급별로 독서 토론, 독서 에세이 경연을 벌이고 연말에는 그 결과를 공유하는 독서 축제를 연다. 이처럼 아래로부터 독서 문화를 확산시키려는 노력과 다채로운 성공 사례들이 공유되면 좋겠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입시, 취업, 생계에 찌들지 않아야 책 읽을 마음이 생긴다.
['학종 독서활동 기록'엔 이견]
曺 "입시 도구로 변질" 禹 "공교육 살리는 길"
최근 대학마다 확대하는 입시제도인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독서 활동 기록은 내신 성적, 동아리·봉사 활동 실적만큼이나 중요한 평가 요소다. 대입에서 읽기가 중요해진 데 대해서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의 견해가 서로 엇갈렸다.
조희연 교육감은 입시에서 읽기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학생들의 책 읽기가 대학 잘 가기 위한 '도구적 독서'로 변질될 것을 우려했다. 조 교육감은 "독서는 그 자체로도 풍요로운 삶, 좋은 교육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입시를 너무 강조하면 책을 읽는 데 투자하는 시간 대비 효과가 얼마나 되느냐 하는 식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 서울대에서 추천 고전 100권 목록을 내놓자 '다이제스트(요약본)'가 나와, 많은 학생이 책 한 권을 온전히 읽는 대신 100권의 핵심 엑기스만 읽었다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좋은 대학에 갈 가능성이 높아지겠지만, 이를 과도하게 연결 지으면 학생들이 책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반면 우동기 교육감은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고교 3년간 어떤 책을 읽었는지 평가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자녀가 책 읽는 시간을 아깝다고 여겼던 고등학교 학부모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설득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책을 많이 읽는 학생이 좋은 대학에 간다는 사실을 계량화하기가 어려웠지만, 이제는 독서와 입시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 교육감은 "대구에서도 독서 교육을 열심히 하는 선생님이 있는 학교가 학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며 "책 읽기를 기초로 토론식·프로젝트식 수업이 이뤄지면, 교사가 학생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학생부에 기록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럼 대학에서도 학생부를 신뢰할 수 있게 되고, 그게 공교육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두 교육감이 권하는 독서法]
曺 "통독형 독서 유익" 禹 "느려도 정독해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우리 사회 '천박한 디지털 읽기 문화'를 지적하며, 어떻게 해야 잘 읽을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눴다.
우동기 교육감은 우선 '슬로 리딩(Slow reading)' 즉 정독(精讀)을 강조했다. 우 교육감은 "대구에서 10년 전 아침독서 10분 운동을 시작하자 출판사들이 10분 만에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더라"며 "학생들이 '몇 권 읽느냐'에 집착하면서,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 대구교육청에서는 많은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며 '한 권의 책이 미래를 바꾼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슬로 리딩을 강조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아이들은 종이책을 읽을 때도 디지털 매체로 읽는 것처럼 띄엄띄엄 읽는 버릇이 있는데 이를 정독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비슷한 맥락에서 통독(通讀)을 강조했다. 그는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교재를 먼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라고 권했다"면서 "이해가 되든 안 되든 한번 쭉 읽어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짧은 텍스트에 익숙해진 요즘의 학생들이 처음 통독을 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면서 "하지만 통독을 하면 지식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단편적인 지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의 지식을 계보학적 맥락에서 이해하려면 통독형 독서가 매우 유익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