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석 경제부 차장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경기고 동기인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와 '절친'이다. 그 인연으로 권 전 부총리가 각별히 챙기는 후배인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도 친해졌다. 10년 넘게 형님, 동생하고 지낸다. 홍 전 회장한테 직접 들은 얘기다.

두 사람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난 2013년 거의 매주 만났다. 산은 회장과 경제수석으로 청와대 서별관회의(비공개 거시경제정책협의회)에서 STX그룹, 동양그룹 등 꼬리를 무는 기업 구조조정 문제를 다뤘다. 당시 서별관회의 주요 멤버는 두 사람과 현오석 경제부총리, 신제윤 금융위원장 등이었다. 벼슬을 따지면 홍 회장이 말석(末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홍 회장의 목소리가 컸다. 당시 서별관회의 멤버 가운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신은 홍 회장뿐이었다. 그는 인수위 핵심 분과로 꼽히는 경제1분과 인수위원을 지냈다. 나머지 멤버들은 박근혜 정부와 이렇다 할 인연이 없었다. 인수위 출신 산은 회장에게 한 수 접어주는 분위기였다. 홍 회장의 '동생'인 조원동 경제수석은 특히 더 했다. 그래서 홍 회장은 STX조선해양 자율협약 추진, STX팬오션 법정관리, 동양그룹 계열사 처리 방안 등 주요 현안마다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 그는 대단히 그리고 유례없이 목소리가 큰 산은 회장이었다.

지난해 하반기에도 홍 전 회장은 서별관회의에 자주 참석했다. 대우조선해양의 5조원대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산은이 대주주인 동시에 주채권은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별관회의는 2년 전과 많이 달랐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가 전원 교체됐다. 친박(親朴) 좌장이란 말을 듣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안종범 경제수석이 회의를 주도했고,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의 얼굴도 바뀌었다. 홍 회장 목소리는 2013년보다 작아졌다. 최 부총리와 안 수석은 홍 회장보다 센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당시 홍 회장은 몇 달 뒤 발표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한국 몫 부총재 후보여서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었다. 혹시나 불발될까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서별관회의에서 산은 회장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았다.

얼마 전 난데없이 홍 전 회장이 베이징에서 한 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 정치권이 시끄럽다. "대우조선해양 지원은 최경환, 안종범 등이 다 정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여당에서는 "배신자가 나타났다"고 하고, 야당은 "실세들이 쥐락펴락했다"면서 청문회를 열겠다고 하는 모양이다. 당시 부총리와 경제수석은 맡은 일을 한 것이지, 권한 없이 끼어든 실세가 아니다. 폭로니 뭐니 할 일이 아니다.

그는 지난 2013년 '원동이 동생'이 경제수석으로 있을 때만큼 서별관회의에서 어깨를 펴지 못했던 것이 영 서운했던 모양이다. 박근혜 정부 낙하산 인사의 최대 수혜자인 그가 이러는 게 참 어처구니없어 보인다. 한 정부 관계자는 "홍 전 회장의 언론 인터뷰는 배신이 아니라 등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런 일로 폭로 인터뷰하고 배신자 타령이나 청문회 운운할 만큼 경제 상황이 한가한가. 4만명이 넘는 종업원을 거느린 조선소가 반년 넘게 수주 절벽에 시달리고 있다. 그 조선소 노조는 파업하겠다고 한국 경제를 협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