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석 기자

프랑스 TV 채널 어디를 돌려도 사내들이 치고받고 피를 흘리는 끔찍한 장면이 계속 나온다. 쇠파이프에 맥주병이 날아다니고, 손도끼를 든 이들도 있다. 이를 진압하는 경찰은 최루가스에 물대포까지 동원한다. 파리 테러 이후 전 프랑스에 경계령이 내려진 가운데, 남부 해안도시 마르세유에서 벌어진 '훌리건'들의 폭력 장면이다. 테러 위협과 잇따른 파업 사태 속에 어렵게 막을 올린 유로 2016이 훌리건들의 폭력 사태로 시작부터 멍들고 있다.

훌리건은 축구장에서 극단적인 폭력 행위를 일삼는 광적인 팬을 뜻하는 말이다. 대회 개막전 현장에서 만난 프랑스 축구 팬들과 대화 중에 훌리건 얘기가 나왔다. 그들은 "잉글랜드 훌리건들은 술 마시고 주변에 시비를 걸며 난동 부리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면서 "여기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고 했다. 실제 1998 프랑스월드컵 당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직접 나서 훌리건의 만행을 사과한 적이 있다.

2006 독일월드컵 때는 영국 정부가 앞장서 10년간 훌리건 경력이 있는 8500여명을 출국 금지하기도 했다.

축구장 안에선… 프랑스가 과격 축구 난동꾼들의 폭력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12일 프랑스 마르세유 벨로드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유럽축구선수권 잉글랜드와 러시아의 조별 리그 경기는 양팀 훌리건의 폭력으로 난장판이 됐다. 경기 종료 이후 훌리건들이 엉켜 서로에게 발길질을 하며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 이번 마르세유 훌리건 폭력으로 영국인 2명이 중상을 입는 등 50여명이 다쳤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무서운 자들은 '전투력'이 높기로 유명한 러시아 훌리건들이다. 일단 그들을 만나면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다. '네오나치'를 표방한 극우 세력이 중심인 러시아 훌리건은 25~35세가 주축이며, 군대를 방불케 하는 '전투 훈련'을 따로 받는다고 한다. 러시아 팬 문화를 연구한 로낭 에벵은 레퀴프와 인터뷰에서 "러시아 훌리건은 폭력 행위를 스포츠처럼 생각하고 즐긴다"고 했다. 로코모티브 모스크바나 CSKA 모스크바처럼 국내에선 서로 죽일 듯이 달려드는 라이벌 팀의 훌리건들도 원정 응원을 떠날 때면 러시아 연합군으로 한데 뭉쳐 정벌 활동에 나선다.

그 잉글랜드와 러시아 훌리건이 맞닥뜨린 장소가 바로 마르세유였다. 사건은 11일 잉글랜드―러시아전이 열리기 몇 시간 전 제대로 터졌다. 러시아와 잉글랜드 팬들은 마르세유 옛 항구 지역과 경기장 인근에서 격렬하게 맞붙었다. 잉글랜드 팬 2명이 중태에 빠졌고, 50여명이 다쳐 병원에 실려 갔다.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축구장 밖에선… 프랑스 마르세유 시내에서 일어난 러시아와 잉글랜드 훌리건 사이의 폭력 충돌 과정에서 프랑스 사복 경찰(왼쪽)이 훌리건의 목을 졸라 제압하는 모습.

잉글랜드와 러시아가 한 골씩 주고받으며 1대1로 경기가 끝난 뒤에도 러시아 일부 팬은 안전요원을 뚫고 잉글랜드 응원석으로 넘어가 상대를 발로 차고 물건을 던졌다. 잉글랜드 팬들을 타깃으로 삼고 프랑스로 건너온 러시아 훌리건들은 집요할 정도로 폭력을 휘둘렀다. 일반 팬은 폭력 사태로 마르세유의 대중교통이 마비되는 바람에 걸어서 숙소로 가야 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마르세유는 카오스 그 자체였다"고 보도했다.

기자가 머무는 니스에서도 새벽 팬들 간의 주먹질로 6명이 다쳤다. 12일 경기를 앞둔 전날 밤 북아일랜드 팬들과 니스 지역 훌리건이 충돌했다. 호텔 프런트의 캐럴라인 르로이는 "평화로운 휴양 도시 니스에서 이런 일이 생기다니 믿기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테러 경계령이 내려진 프랑스에선 지금 '축구 폭력'과의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