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예프게니 키신 등 이 시대 최고 피아니스트들이 두루 거쳐 간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한국인 최초로 독주회를 연 피아니스트가 있다. 2014년 방돔 프라이즈에서 우승해 부상으로 리사이틀 기회를 얻은 선우예권(27)이다. "전날에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가, 그 전날에는 헝가리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시프가 연주한 바로 그 무대에서 제가 연주했어요."
막상 무대에 오르자 제 집처럼 편안히 피아노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마지막 연주가 아닌데도 박수가 쏟아져 세 번이나 무대에 나가 인사해야 했다. "베르비에 축제에 서는 게 꿈이었는데 그 꿈이 이뤄졌으니 감동이었죠." 그의 연주를 본 작곡가 키스 레이는 "이 젊은 연주자에게 훌륭한 명성이 따르기를, 그리고 누구도 그에게서 이 진솔함과 평정심을 앗아가지 않기를!"이란 평을 남겼다.
그 기세를 몰아 올 한 해 국내에서만 다섯 차례 리사이틀 무대를 갖는 선우예권이 9일 오후 8시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왼손, 그리고 초절기교' 독주회를 연다. 지난 1월과 5월 이미 두 번의 무대를 소화했고, 세 번째인 이번 무대에선 스크리아빈의 '왼손을 위한 프렐류드와 녹턴', 생상스의 '왼손을 위한 6개의 에튀드' 등 왼손으로만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장면들로 1부를 채운다. 2부에선 리스트의 '피아노를 위한 초절기교 연습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초절기교는 5초 동안 건반을 누르는 횟수가 160회에 달해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다. 그는 "한땐 기교만 보이는 느낌이어서 초절기교를 멀리했지만 언제부턴가 강렬한 메시지가 느껴졌다"며 "한 손으로 양손 못지않은 유려함과 풍성함을 표현해내야 하는 왼손 곡들은 승부욕이 남달랐던 스크리아빈과 내가 닮은 데가 있어 꼭 하고 싶었다"고 했다.
연주자로서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초등학교 2학년 때 누나를 따라 학원에 갔다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선우예권은 자기보다 어린 애가 더 어려운 곡을 치면 질투가 나서 연습에 매달릴 만큼 집요한 구석이 있는 꼬마였다. 16세 때 미 커티스 음악원에 유학 가 실내악을 자주 접하면서 "귀가 새롭게 열리는 순간"을 경험했다. 표현법이 한층 풍성해지면서 독주와 실내악에 고루 강한 연주자로 성장했다. 선우예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천천히 제 길을 가는 지금 이 순간이 참 좋다"고 했다.
▲왼손, 그리고 초절기교=9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02)6303-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