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秦)의 중국 통일과 한(漢)의 주변 정복으로 기원전 1세기 무렵 중국 중심 천하질서가 처음 확립됐던 동북아시아는 4세기 들어 격동에 빠져들었다. 한나라에 이은 통일 왕조였던 진(晉)은 300년 황족들의 권력 투쟁인 8왕의 난 이후 해체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러자 진의 북쪽과 서쪽 변경지대에 있던 흉노·선비·저(

)·강(羌) 등 이민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세우고 황제를 자칭했다. 이들이 중국 북부와 서부를 차지하면서 5호16국 시대가 열렸다.

중국의 이 같은 변화는 만주와 한반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몽골고원 동부의 선비족 일파인 모용씨(慕容氏)가 남하하여 요서 지역을 장악하자 낙랑·대방군과 중국 본토의 연결이 끊어졌다. 이를 틈타 고구려가 313년과 314년 낙랑과 대방을 잇달아 멸망시켰고, 낙랑·대방의 일부 유민은 모용씨와 백제에 투항했다. 이후 고구려는 서쪽으로 모용씨, 남쪽으로 백제와 치열한 각축을 벌였다. 요하 유역의 지배권을 놓고 모용씨와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른 고구려는 342년 모용황의 공격으로 수도가 함락되는 시련을 겪은 후에는 남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하지만 낙랑·대방 지역을 차지하려는 백제 역시 북진을 도모하였기 때문에 두 나라는 거세게 부딪쳤다. 369년 고구려 고국원왕이 백제를 공격했다가 실패했고, 371년에는 백제 근초고왕이 평양성을 공격하자 고국원왕이 출전했다가 전사했다.

고구려와 백제의 주도권 다툼은 국제관계에도 반영됐다. 고구려는 355년 모용씨가 세운 전연(前燕)의 책봉을 받았고 그 뒤를 이은 전진(前秦)과 우호 관계를 유지했다. 백제는 372년 중국 남부의 동진(東晉)에 사신을 보내 조공책봉 관계를 맺었다. 백제는 또 낙랑·대방이 개척한 동방 무역로를 계승하여 남해안을 따라 가야·왜(倭)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이렇게 형성된 백제·가야·왜 연합세력이 신라를 압박하자 신라는 고구려에 의존했다. 이렇게 해서 4세기 후반 동북아는 남방국가 연합과 북방국가 연합이 대립하는 정세가 형성됐다.

공동 기획: 한국고대사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