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5시 서울 장충동 신라면세점 주변 도로는 '버스터미널'을 방불케 했다. 오후 4시부터 면세점으로 향하는 45인승 관광버스들이 장충체육관 사거리로 몰려 교통 체증이 발생했다. 면세점에서 나온 버스들이 왕복 8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불법 유턴을 하는 바람에 남쪽 동호대교 방향으로 가던 직진 차량들이 줄줄이 멈춰 섰다. 관광버스에 가로막힌 직진 차량들은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려댔다. 12m 길이의 관광버스들은 한 번에 유턴을 못해서 다시 후진을 했다가 핸들을 왼쪽으로 틀었다. 그 사이 신호가 바뀌었고, 이번엔 반대쪽 차선에서 도심 방향으로 진행하는 차들이 유턴하는 버스 '차벽'에 막혔다. 버스 뒤에 바짝 붙어 있던 모닝 차량이 하마터면 후진하는 버스와 충돌할 뻔했다.
5시 30분쯤 퇴근 차량이 늘어나며 도로는 만원이 됐는데, 한 관광버스 기사가 4차로에 불법 주차를 하곤 어디론가 사라졌다. 경찰이나 서울시 불법 주차 단속반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무법천지'를 서울 중구 모범운전자회 회원 4명이 호각을 불며 정리하고 있었다. 모범운전자회 이진영씨는 "버스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교통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남산 국립극장에서 신라면세점으로 내려오는 도로 우측엔 400m가량 '버스 띠'가 이어졌다. 쇼핑을 마치고 나올 중국인 관광객을 기다리는 이 경유 버스들은 대부분 시동을 켠 채 매연을 내뿜었다. 역시 단속반원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외국 관광객을 면세점으로 실어나르는 관광버스 때문에 서울 도심 곳곳이 극심한 체증을 빚고 있다. 면세점이 관광버스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면세점발(發) 교통대란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재 서울 도심에는 장충동 신라면세점을 비롯해 소공동 롯데면세점, 인사동 에스엠면세점, 명동 신세계면세점, 세종대로 동화면세점, 동대문 두타면세점 등 대형 면세점이 즐비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의 주요 관광지를 오가는 관광버스는 하루 평균 1047대(2015년 기준)에 이른다.
이런 관광버스로 이동하는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에게 면세점은 필수 코스다. 하지만 관광버스를 수용할 수 있는 면세점 주차 공간은 부족한 실정이다. 신라면세점의 경우 호텔·면세점 부지에 40면, 남산 자유총연맹 부지에 임차한 20면을 확보하고 있다. 관광버스 100여대가 한꺼번에 몰리는 오후 4~7시 피크타임에는 주차대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달 문을 연 명동 신세계면세점은 직영 주차장 없이 서울역과 서대문 인근 주차장 90면을 임차해 쓰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소공동 롯데면세점은 45인승 버스 15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밖에 없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최근 영업을 시작한 용산 HDC신라면세점을 제외한 도심 면세점 대부분이 만성적인 주차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5시쯤 소공동 롯데면세점 앞 도로 오른쪽 2개 차선은 관광버스들이 점거했다. 이 버스들이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들을 내려주거나 태우기 위해 보통 20~30분씩 대기하면서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관광버스들이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차지하면서 시민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 도로 위로 나와 서야 했다. 같은 시각 동대문 두타면세점 맞은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도 7대의 관광버스가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차지하고 세워져 있었다. 세종대로 동화면세점 앞에서는 직원들이 나와 관광버스를 이면도로에 주차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이면도로 주차는 불법인데도 단속하는 요원은 보이지 않았다.
면세점 주변 교통 체증에 대해 주무 관청인 서울시와 면세점 업계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서울시는 "면세점을 세우면서 사업자들이 주차장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탓"이라고 했다. 반면 신라면세점 관계자는 "(장충체육관 사거리 일대) 교통 혼잡은 면세점과 무관하고, 약수고가를 헐며 생긴 병목현상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모(여·36)씨는 이날 유모차를 끌고 소공동 영플라자를 찾았다가 유모차 덮개를 내렸다. 김씨는 "면세점 앞 관광버스들이 내뿜는 매연 때문에 숨 막힐 뻔했다"면서 "모조리 단속 대상인데, 왜 그냥 두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