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열기가 연휴 내내 이어졌다. 현충일인 6일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이 열리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몰려든 인파로 북적였다. 이날만 3428명이 찾아와 연휴 사흘간 1만1000명 넘게 전시를 관람했다.

"이중섭은 그저 가난해서 은지화(銀紙畵)를 그린 게 아닙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재료와 기법에 대해서 연구한 결과물이죠. 그는 이 은지화들이 나중에 그릴 '벽화'의 밑그림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도슨트(전시 해설사)의 설명에 관람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중섭이 담배 은박지를 예리한 도구로 긁어 새긴‘은지화’앞에서 관람객 발길이 오래 머물렀다.

["이중섭의 보석같은 작품들이 한자리에... 30년만의 사건"]

은지화는 이중섭이 창안한 새로운 기법의 작품이다. 양담배를 싸는 종이에 입혀진 은박을 새기거나 긁고 그 위에 물감을 바른 후 닦아낸 것. 긁힌 부분에만 물감 자국이 남아서 깊이 파인 선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드로잉이다. 조선진(35)씨는 "서귀포 시절의 행복했던 가족 모습을 날카로운 도구로 새기면서 추억에 잠겼을 화가를 생각하니 숙연해진다"고 했다.

전시장 한쪽 벽면은 대형 벽화가 됐다. 가로 16m×세로 3.2m 스크린에 발가벗은 아이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면서 은빛으로 반짝였다. 물고기와 게와 천진난만하게 어울려 노는 소년들, 가족에 둘러싸여 그림 그리는 콧수염 화가가 예리한 빛을 발했다. 작은 은지화 20여 점을 각각 모자이크 촬영한 뒤 전시장 벽에 쏘아서 100배 크기로 확대한 것이다. "큰 사원 같은 곳의 천장이나 벽에 온통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던 화가의 꿈이 현대 영상 기술로 실현됐다.

전시는 이중섭이 거쳐 갔던 시공간을 따라 전개된다. 부산·제주도 피란 시기의 초기작이 전시된 1전시실에 이어 6·25전쟁 직후 최고 절정기 작품을 남겼던 통영 시대, 가족을 그리워하며 수많은 편지를 남긴 서울 시대를 지나는 동안 작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포개진다.

"빨리 만나고 싶어 죽겠소. 이 세상에 나만큼 아내를 사랑하고 미친 듯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라는 연서(戀書) 앞에서 김정식(여·61)씨는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나이가 되니 그 절절한 마음이 느껴진다"며 눈물을 닦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가족을 만나리라는 희망이 마지막 방에선 체념으로 바뀐다. 이중섭은 1956년 서울의 정릉 골짜기에서 생의 마지막 나날들을 보내며 '돌아오지 않는 강' 연작을 그렸다. 자그마한 집 창문에 얼굴을 기댄 소년이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저 뒤에는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장에 갔다 돌아오는 어머니 모습이 보인다. 어머니가 곧 집에 도착하리란 것을 관객은 알지만, 소년은 모른다. 대전에서 온 박영준(37)씨는 "하염없이 어머니를 기다리는 모습이 애잔하게 가슴을 파고든다"고 했다.

▲입장료: 성인 7000원(덕수궁 입장료 1000원 포함), 유치원 및 초·중·고교생 4000원

▲문의: (02)522-3342, www.jungseo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