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배기 손자를 돌보며 블로그에 글을 올리던 이상인(65)씨가 '할아버지의 육아일기'를 책으로 펴내면서 쓴 글이다.

맞벌이 가정의 육아는 조부모 몫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전국 맞벌이 518만6000가구 중 절반 가까이가 조부모에게 육아를 맡긴다. 국립국어원이 '노부모가 맞벌이 자녀를 대신해 아이를 돌보다 생기는 정신적·건강상 문제'라는 뜻의 '손주병'을 신조어로 등록한 것이 4년 전이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손주 돌봄 십계명]

[8년간 할아버지가 쓴 알림장 日記]

육아의 대부분은 할머니들이 떠맡지만, 요즘은 손주의 성장 과정을 꼼꼼히 기록하는 할아버지도 많다. "내 자식 키울 때는 먹고살기 바빠 아이가 어떻게 크는지도 몰랐지만, 은퇴 후엔 아이를 자세히 관찰할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손주와 함께한 일과, 손주를 돌보며 느낀 애틋한 감정을 주로 블로그에 글로 담고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손주 사진을 함께 올리기도 한다.

은퇴 후 작은 농장을 마련해 농사를 짓던 박재율(72)씨는 맞벌이하는 두 아들 내외와 직장 다니는 아내를 대신해 10년간 손주 넷을 차례로 돌봤다. 그간의 일기를 묶어 '할배꽃, 꽃 그늘'(트로이목마)이라는 책으로도 펴냈다. 요즘엔 육아일기 내용을 토대로 '할배꽃·손주꽃'이라는 만화도 그린다.

'나는 힘들면서도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즐겁다면 즐겁다… 우리 손주들 네 명이나 몰고 다니는 걸 본 동대표 아주머니는 표창 상신해야겠다고 하신다. 그때마다 겸연쩍게 '뭐, 제 새끼 제가 돌보는데요' 하고 웃어넘긴다.'

'오늘 하루 3번이나 뒤집었다. 30여년 전 제 애비보다 한 달이나 빨리 뒤집었다. 인류가 진화했나?'

박재율씨가 손주들 육아일기 내용을 토대로 그려 온라인에 연재하는 만화 ‘할배꽃·손주꽃’.

박씨는 "조부모 육아라고 하면 주로 할머니가 손주를 돌본다고 생각하지만 할아버지도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아직 어린 손주들도 육아일기를 읽으면서 할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전영철(63)씨는 아내와 함께 동갑내기 손자와 외손녀를 한꺼번에 돌본 경우. 6년간 블로그에 손주들 육아일기를 써왔다. "조부모가 돌보는 아이라고 해서 남들보다 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육아 서적을 두루 섭렵해가며 일기를 썼다"고 한다.

'오전 4시 30분에 다시 아이가 칭얼대기 시작했다. 일어나서 함께 놀아주기를 6시까지. 마음속에서는 잠을 더 자야 한다는 것뿐이다.'

'손녀에게 할아버지는 함께 놀아주는 사람, 자기 부탁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아빠는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손녀의 작은 변심에 할아버지는 감사하기도 하고 조금은 섭섭하기도 하였다.'

임영주 부모교육연구소장은 "부모는 자기 아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들지만, 할아버지는 한 발짝 물러서서 집안 전통이나 살아온 지혜까지 담아낼 수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을 들춰본 회사원 정모(26)씨는 "할아버지 집에서 밥 먹으며 재롱 떤 것과 같은 평범한 일상도 할아버지에겐 특별한 사건이었음을 알게 됐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알게 해준 선물이었다"고 말했다.

[이계진의 할아버지 육아일기]

['황혼육아族' 250만, 할빠(아빠 역할하는 할아버지)가 아동용품 큰손됐다]

손주 키우기 전선에 뛰어드는 할아버지들

할아버지들이 손자·손녀 육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른바 '하빠' 전성시대다. 하빠는 할아버지와 아빠를 합친 신조어다. 은퇴 후 집에서 삼시 세 끼 밥만 축낸다며 '삼식이'라고 놀림을 당했던 할아버지들이 집 안의 '투명인간' 신세에서 육아의 주축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할아버지'를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어린 아이들 입에서 '하빠'라는 말이 나왔고, 이후 신씨가 지난 5월에 낸 책 '하빠의 육아일기'를 통해 많이 쓰이게 됐다.

'할아버지의 경제력과 할머니의 체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이 육아의 비법'이라는 우스갯소리는 이제 옛말이 됐다. 맞벌이 부부들은 "엄마 역할을 해주는 할머니뿐 아니라 아빠 역할을 해 줄 할아버지까지 나서야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할아버지들은 왜 육아 전선에 뛰어들며 '하빠'가 되길 자청하는 것일까.

2013년 10월 15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원서곡길. 신상채 전직 경찰서장이 집뜰에서 손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신씨가 쓴 '할아버지 육아일기'로 화제다.

첫 손주를 보는 할아버지들은 대개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이다. 6·25 전쟁 후 성장 가도를 달리던 한국에서 자라 한창 사회생활을 할 시기에 외환위기를 겪었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쳤다. 자연스레 자녀 양육은 아내의 몫이 되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들은 육아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할아버지에겐 손주 키우기가 생애 첫 육아다. '하빠'들은 손주를 키우면서 자녀나 부인과의 관계가 돈독해졌다고 말한다. 의정부 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영훈 교수는 "손주의 양육에 참여하려는 욕구는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신상채씨는 10년 전에 지은 661㎡(약 200평) 크기의 2층짜리 단독주택에서 아들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 아들 부부의 딸인 휘수·유수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에 컸다. 큰길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딸 부부는 아들 이겸이를 자주 맡긴다. 신씨의 오전 일과는 잠에서 깬 아이들이 용변을 보게 하고 씻겨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는 것이다. "내 아들, 딸을 키우던 젊은 날에는 먹고 살기 급급해 자식 키우는 일에 무책임했어요. 은퇴 후 집에서 외로운 처지가 되어도 할 말이 없겠더라고요. 은퇴한 친구들을 봐도 자신의 역할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요. '지금이라도 손자들에게 후회 없는 사랑을 듬뿍 쏟아주는 방법으로 그때의 아쉬움을 풀어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오는 오후 4시쯤부터 부모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함께 놀아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기술에서는 할머니를 따라갈 수 없죠. 하지만 제가 도와주지 않으면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되는 손주들을 어떻게 보겠어요?" 신씨는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뾰족한 스케치북 모서리를 둥글게 자르는 것과 아기 똥 치우기가 주특기"라며 웃었다.

신씨는 "내 아들은 스크럼족(Scrum 族)"이라고 말했다. 스크럼족은 결혼 후에도 경제적인 이유로 부모와 함께 사는 성인을 일컫는 말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가구주(家口主)인 부모와 함께 사는 30~49세 성인은 약 48만명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로 늘어난 수치인데, '자녀 부양 때문'이라는 응답이 약 40%였다. 젊은 맞벌이 부부들이 늘면서 할머니를 넘어 할아버지까지 육아에 나설 수밖에 없다.

◇"웃는 모습 한 번에 피로가 '삭'"

'작은 아이 유수는 할미보다도 내 등이 더 편한가 보다. 그러잖아도 부실한 허리지만, 허리의 통증이 몰려와도 아이가 편히 잠들 수만 있다면 앞으로도 아이 업어주기는 계속하고 싶다.'(신상채씨의 책 '하빠의 육아일기')

'분명히 배가 고플 텐테도 자꾸만 뱉어내니 골치가 아프다. 컴퓨터를 켜고 밥을 뱉어내는 아이를 검색했더니 하하, 우리 재영이 같은 애들이 바글바글하는구먼.'(이창식씨의 책 '하찌의 육아일기')

'하빠'들은 난생처음 해보는 육아가 쉽지는 않더라고 입을 모은다. 신씨는 "동생들을 업을 때는 어려서 몰랐고, 아비가 돼서 애들을 업을 때는 내가 젊은이였으니 아기가 무거운 줄 몰랐다"고 했다. "할아비가 되어서는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네요, 하하."

2013년 10월 15일 '하찌의 육아일기'의 저자 이창식 할아버지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손자 재영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창식씨는 "애를 맡아 키운 지 한 달 쯤 지난 후부터 육아일기를 적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말했다. "왜? 너무 힘들어서요. 보상은 못 받아도 '너를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는 기록은 남겨야겠다 싶었습니다."

이씨는 아이 하나 키우는데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지 몰랐다고 했다. 가끔 주말에 아이와 함께 놀아주면 되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옛날 대우전자에서 직장생활을 10년 했어요. 10년 딱 채워서 과장까지 하다가 번역가로 전업했지요. 그땐 이미 딸이 초등학교 졸업할 때쯤이었으니 기저귀 갈아줄 일이 있었겠나. 이런 줄 몰랐지, 허허허." 신씨는 하루 세 번씩 손자의 똥 기저귀를 갈고, '뽀로로' '코코몽' '구름빵'을 공부한다. "말년에 쉬고 싶은 마음도 들지요. 그래도 딸을 키울 때 느끼지 못했던 기쁨을 느낄 수 있잖아요. 딸에게 미처 못해줬던 걸 해준다는 마음으로 손자를 키우고 있어요."

신씨는 "평생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첫째 손녀 휘수는 거의 제가 맡아 키웠거든요. '엄마' '아빠'가 아니라 '하빠'라는 말을 제일 먼저 한 거 있죠. 가족들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쳐다보더라고요. 저요?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줄줄 흘러서 가족들 눈치 볼 새도 없었답니다, 하하." ▷할아버지들 "기저귀 어떻게 가나요?"

'유교의 나라' 조선에도 직접 손자 키운 '선비 하빠' 있었다

직접 손자를 기르며 육아일기를 적는 '하빠'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16세기 조선 사대부 묵재(默齋) 이문건(李文楗·1494~1567)은 손자 숙길을 직접 키웠다. 이문건은 손자의 탯줄을 끊어주던 날부터 자신이 죽는 날까지 17년 동안 손자의 육아일기를 꼼꼼히 기록했다.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육아일기인 '양아록(養兒錄)'이다.

이문건은 육아일기를 쓰게 된 이유를 "나이 들어 귀양살이를 하는데 벗할 동료가 줄어들었고, 살아갈 뚜렷한 방도가 없어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아내는 (손자만 남겨놓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혼자 외롭게 지내는 처지였다"고 말했다. 당시 이문건은 을사사화(1545)에 연루되어 유배생활 중이었다. 자식 여섯이 모두 젊은 나이에 죽은 그에게는 58세 나이에 얻은 손자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손자의 행동 하나하나에 웃음꽃이 피었고 밥을 먹지 않는 아이 때문에 골치를 앓는 것도 지금과 다르지 않다.

할아버지는 아픈 손자를 위해 뒤치다꺼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문건은 "6월에 이르러 전염병에 걸려 아파할 때 손자는 죽 먹이고 똥 누이는 일을 일일이 할아비더러 해달라고 졸라댔다. 기쁜 마음에 꺼리지 않고 돌봐주니 즐거워하고 좋아했다"고 적었다.

처음 해보는 육아에 당황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문건은 여섯 살 난 손자가 새끼줄을 씹다가 이가 빠져 울자 당황해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이가 빠졌을 때 처음에는 두려웠고 일찍 이를 가는 것 또한 기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자세히 들어본 후에야 마침내 의아해하지 않았다."

그가 남긴 육아일기를 통해 조선시대 돌잔치 풍경도 짐작해볼 수 있다. ▷最古 육아일기 '양아록' 쓴 사대부 묵재 이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