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작 서경대 석좌교수

19대 국회가 29일 종료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한 근로자파견법,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등 노동 4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특별법 등 노동 개혁과 경제 활성화 법안이 모두 자동 폐기됐다. 여대야소 국회에서 실패한 법안이 새로 출범하는 여소야대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지난 4월 대통령은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대통령중심제이지만 국회에서 되는 것이 없다 보니 정부로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하소연했지만, 이어진 여야 원내대표와 대통령 회담의 주제는 민생 법안보다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20대 국회 행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무기력한 대통령 아래서 정부 관료와 공무원은 손을 놓고 야당 눈치만 보면서 복지부동(伏地不動)하게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첫 3년은 식물 국회 때문에, 마지막 2년은 식물 대통령·식물 정부가 되어 아무것도 못 하는 무능한 정부로 기억될 것이다. 대한민국과 박 대통령 모두에게 불행이다.

야당은 협박 정치를 할 것 같다.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국정 운영을 하지 않으면 정권 내부의 일을 하나씩 터뜨릴 것이라고 협박한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만일 5·18 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정권에 협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고 협박을 거듭했다. 19대 국회가 박근혜 정부에 주는 마지막 선물(?)은 상시 청문회였다. 박 대통령은 상시 청문회로 행정부 기능이 마비될 것을 우려해 아프리카 순방 중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전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20대 국회에서 협치(協治)는 끝"이라던 두 야당은 "20대 국회에서 재의결해서 통과시킬 것"이라고 협박했다. 20대 국회는 협치가 아니라 협박의 정치 즉 협치(脅治)를 계속하면서 박근혜 정부를 빈사 상태로 빠트릴 것이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새누리당은 친박·비박으로 나뉘어 싸움질만 일삼는다. 분당하자는 말까지 나온다.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정권 재창출 전망도 어둡다. 4·13 총선 전 비공개 여론조사에 의하면 46.3%대 33.4%로 정권 재창출보다는 정권 교체 지지가 높았다. 좌파 우파가 10년 주기로 정권을 교체한다는 정권 교체 주기설을 보태면 차기 정권은 야당에 넘어가게 될 전망이다. 2년 후 우파 정권이 막을 내리고 좌파가 집권하면 거의 확실하게 이명박-박근혜 국회 청문회가 열릴 것이다. 해산된 통합진보당, 중단된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 세월호 희생자 가족, 고 노무현 대통령 친족 등이 벼르고 있을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발상의 전환을 해서 국민의당과 연정을 하고 이원집정제 개헌을 감행해 정권 교체의 충격을 완화할 수도 있지만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순혈주의 정치, 융통성 없는 원칙론적 정치를 고집하는 대통령은 민생 법안 입법 자체보다 자신의 방법대로 입법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박 대통령이 변할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좌파와 우파는 대결의 대상이지 협치(協治)의 파트너가 될 수 없다. 역사가 증명한다. 우파는 중도 보수 내지는 중도와의 협치만이 가능할 뿐이다. 20대 총선 결과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자. 정치 색깔로 본다면 우파가 130명(새누리당+새누리당 탈당파), 국민의당이 38명, 나머지 132명은 좌파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은 호남과 안철수 그룹을 중도 내지 중도 우파로 분류한다. 호남이 중도 우파로 파격적 변신을 한다면 국회는 168명 의원의 우파 국회가 될 것이다.

파격의 정치가 세 가지 이유로 가능하다. 첫째, 호남은 진보 좌파를 떠났다. 우파와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다. 둘째, 국민의당의 성공에는 중도 우파의 지지가 있다. 셋째, 국민은 박근혜 정부가 실패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을 지고 헌정 사상 최초의 정치를 펴야 한다. 제2당의 위치를 과감하게 버리고 제3당이 되어 국회의 요직인 국회의장, 법사위원장 등을 모두 국민의당에 주어 '1여 2야'에서 벗어나 '2여 1야'의 국회를 창출하는 파격의 배수진 정치를 말한다. 2여의 정당 연합으로 국회 운영은 정상화되고 협치(脅治)를 벗어나 박 대통령도 안정되게 정부를 운영할 수 있게 된다. 내년 대선에선 중도와 우파 연합 영호남 정권 탄생도 가능할 것이다.

입법 권력을 중도인 국민의당에 양보해 호남 민심을 우측으로 당기는 전대미문의 정치를 새누리당에 기대한다. 소탐대실하는 새누리당은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