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피아니스트

지금은 초대손님으로 나가고 있는 라디오 FM 방송에서 주말 MC로 활동한 적이 있다. 3년 반 동안 매주 두 명, 연인원 350명 정도의 음악가들을 인터뷰하며 얻은 경험과 인맥, 추억은 큰 자산이다. 방송을 진행하면서 제일 힘든 일은 긴장한 출연자를 다독이는 거였다.

"저는 연주하는 것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게 더 떨려요. 어쩌죠?" "걱정하지 마세요. 잘하실 겁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몇 차례 예외는 있었지만 음악가들은 일단 '온 에어(On Air)'의 빨간빛을 보는 순간 정확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무대에 서는 연주자는 '단 한 번의 기회'에 기량을 쏟아붓는 일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공부하기 위해 찾아온 학생들에게 첫 번째로 강조하는 것도 이 '한 방의 법칙'이다. 일단 연주를 시작했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 다시 치거나 더듬거리면 빵점짜리 연주가 된다는 걸 배우면서 학생들은 프로페셔널의 길에 한 발짝 다가선다. 한 번의 기회에서 베스트를 발휘해야 한다는 각오가 생기면 집중력은 절로 생긴다. 연주를 방해하는 모든 요소는 과감히 버린 채 음 하나하나에 모든 걸 거는 것이다.

몇 달, 몇 년 준비한 연주나 시험, 콩쿠르에서 단 한 번의 기회에 실력을 모두 내보여야 한다는 조건은 가혹하다. "실수는 대가(大家)라도 하게 마련이며 누구도 주워 담을 수 없다. 지나간 것은 잊어버리고 앞으로 다가오는 음들에 얼마나 많은 집중력을 실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하지." 학생들에게 침 튀기며 설명하지만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진실성이다. "그래도 난 이 직업이 참 매력 있어. 마지막 순간까지 거짓 없이 살 수 있잖아?" 스스로를 벼랑 끝에 내몰아야 하고 절박한 순간에도 당당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지만, 자신과 싸우며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매 순간이 진실하고 솔직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멋지지 않은가. 음악이 좋아 힘든 길에 들어선 나와 같은 연주자들 모두가 추구하는 그 진실됨은 삶의 목표이자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