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해가 나면 눈이 부셔
내 뒤로 숨는 아이.
보일 듯 말 듯
키도 내 키보다
큰 듯 작은 듯
내 앞으로 걸어나와
나보다 먼저
갈 듯 말 듯
부끄러워 망설이는 아이.
혼자 걷는 길
해가 길면 길수록
집이 멀면 멀수록
내 뒤에서 든든한 아이.
한 번쯤 보고 싶은
그 얼굴.

―서지희 (1988~ )

세상은 나 혼자인 것 같아도 결코 혼자가 아니다. 밤길을 혼자 걸어도 별이 말없이 나를 지켜보고, 산비탈을 혼자 오를 때 손을 뻗으면 말없이 나무가 내 손을 잡아준다. 그림자 또한 그러하다. 혼자 외로워 휘파람 불며 가면 '힘내! 내가 있잖아' 하듯 나를 말없이 따라온다.

그림자는 내 뒤로 숨기만 하는 부끄러움 많은 아이다. 그러나 혼자 걷는 길집이 멀면 멀수록 내 뒤에서 든든하게 따라와 준다. 그림자는 언제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말없이 착한 일을 하고 얼굴도 이름도 보여주지 않는 사람처럼 그림자는 늘 뒷모습만 보여준다. 이런 그림자 친구 하나 곁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