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서산굿모닝의원 순천향의대 외래 교수

근래 정부에서 환자들의 탈원화(脫院化) 및 입원 병동 축소 움직임이 있었다. 한 공중파TV에서 '강제 입원'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도한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이번 '강남역 묻지마 살인'은 사실은 조현병 환자의 피해망상으로 인한 범죄이다. 그런데 이를 '여성 혐오의 결과'로만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미국에서 조승희가 수십 명을 총으로 쏴도, 주한 미국대사를 테러해도 미국인들은 미국에 대한 혐오감 표출로 확대 해석하기보다는 개인 문제로 여겼다.

이번 사건의 원인은 여성 혐오증과는 다르다. 명백히 '피해망상으로 인한 우발적 살인'인 것이다. 정신분열병(조현병)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망상이며, 피해망상은 누군가가 내게 피해를 주려고 한다는 절대적 믿음이다. 여성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극도의 열등감, 여성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있으나 현실적 좌절 등이 복합돼 갖게 된 망상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사회 전반과 언론의 시각이다. 관심 위주의 사안으로만 보니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해결책까지 '공중화장실 남녀 분리 의무화' 등 엉뚱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정부도 정신과 입원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중요한 순간에 사건이 일어나 난처해 하는 것 같다. 사실 입원 규정이 까다로워져서 탈원화되면,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입원하기 어려워져 이런 상황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사회 안전망부터 확충해야 한다. 각 지역 보건소나 정신보건센터에서 환자 관리에 좀 더 적극 나서서 정신의료기관과 연계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는 국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는 정신과 환자와 건강한 사람 모두가 누려야 한다. 정신과 환자들도 양질의 치료를 받으며 살 권리가 있다. 내가 만나는 환자들은 대부분 착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치료를 거부하고, 악화되고, 잘못 판단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정신과 환자도 위험을 예견하고 적절히 치료하면 대체로 성공할 수 있다. 환자 치료의 연속성 유지가 범죄 예방의 길이고, 재범 가능성도 줄이는 길이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은 '여성 혐오를 멈추라'는 피켓이 아니라, '정신과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라'는 피켓이 필요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