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지겠구나 하는 마음과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함께 들었습니다.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해서 자신 있게 샷을 했죠."

박성현(23)은 22일 막을 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춘천 라데나 골프클럽) 결승전 17번 홀(파4)을 이렇게 설명했다.

결승전 16번 홀까지 박성현의 우승은 멀어 보였다. 박성현이 2홀을 남기고 2홀 차로 '도미(dormie)' 상황에 몰린 것이다. 상대는 돌풍의 김지현(25)이었다. 박성현과 김지현은 통계상 '비교 불가'였다. 박성현은 시즌 상금, 평균 타수, 그린 적중률, 드라이브 비거리에서 1위를 달렸다. 김지현은 시즌 상금 35위, 평균 타수 30위, 그린 적중률 32위, 드라이브 비거리 66위였다.

하지만 김지현은 이변의 주인공이었다. 2010년 1부 투어에 데뷔해 우승 경력이 없었던 김지현은 올 시즌 2승을 기록 중인 장수연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김지현은 장수연을 7홀 차이로 누르는 등 64강전부터 준결승까지 5차례 대결에서 74홀만을 치렀다. 주최 측이 박진감 넘치고 공격적인 경기를 유도하려고 그린 스피드를 낮췄는데(4.2→3.5m), 김지현은 느려진 그린 스피드의 수혜자였다. 김지현은 이 대회 역사상 가장 적은 홀을 치르고 결승에 진출했다.

박성현이 22일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동료 선수들의 ‘꽃 세례’를 받는 모습. 박성현은 “3일 정도 집에서 정말 꼼짝도 하지 않고 쉴 생각”이라고 했다.

[박성현 골프선수 프로필]

박성현은 17번 홀 두 번째 샷으로 김지현의 돌풍을 잠재웠다. 박성현은 이 샷으로 깃대를 맞히고 세 번째 샷에 가볍게 버디를 기록하면서 김지현으로부터 한 홀을 빼앗았다. 박성현의 위세에 흔들렸는지 김지현은 18번 홀(파5)에서 3번째 샷을 벙커에 빠뜨리고 결국 파 세이브에 실패했다.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간 박성현은 10번 홀(파4)에서 벌어진 첫 번째 연장전에서 3m 버디 퍼트에 성공하며 우승을 확정했다. 장수연이 3위, 배선우가 4위였다.

박성현은 이번 우승으로 지난해 처음 출전한 이 대회에서 1회전 탈락하며 구긴 자존심도 회복했다. 그는 "정규 투어에서 활동하기 전부터 정말 우승하고 싶었던 대회였다. 정말 짜릿했다"며 "이번 대회를 통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나흘 동안 103홀을 도는 강행군이었지만 박성현의 얼굴에선 피곤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36홀씩 돌면 굉장히 힘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괜찮았다"면서도 "아마 내일은 힘들 것 같다"고 웃었다.

6개 대회 만에 시즌 4승과 함께 우승 상금 1억2000만원을 보탠 박성현은 이번 시즌 다승 1위, 상금 1위 등 각종 부문 선두를 굳건히 했다. 박성현이 독주 체제를 갖추면서 이제 김효주가 2014년에 세운 시즌 최다 상금 12억890만원, 신지애가 가진 KLPGA 최다승 기록(9승)을 깰지에 관심이 쏠리게 됐다.

☞도미란?

매치플레이에서 이긴 홀의 수와 남은 홀의 수가 같은 상황을 ‘도미’(dormie)라고 표현한다. 이번 경기처럼 2홀을 남긴 16번 홀까지 한 선수가 2홀을 앞선(2up) 상황이 ‘도미’다. 이 용어는 프랑스어와 라틴어의 ‘잔다’는 뜻의 단어에서 유래했다. ‘잠자는 곳’인 기숙사(dormitory)도 여기서 나왔다. 골프의 ‘도미’란 이변이 없는 한 이길 수 있으니 여유를 가져도 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