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대만 국가(國歌) 맞아요?"

20일 대만의 첫 여성 총통인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취임식이 열린 수도 타이베이 총통부 앞 광장. '대만 국가 제창' 순서에 국가 대신 100여명의 원주민 복장 아이들이 나와 방언으로 민요를 부르자 외신기자들이 웅성거렸다. 국가는 아이들의 노래가 끝나고 나서야 나왔다. 사회자가 "국가를 부르기에 앞서 대만의 뿌리인 원주민들의 노래를 들어봤다"고 하자 2만6000명의 참석자가 대만 방언으로 "까유 까유 타이완(대만 파이팅!)"을 외쳤다. 일부는 대만 독립을 상징하는 초록색 깃발을 흔들었다. 타이야족 전통 의상을 입은 싱쩡쩡(62)씨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객가(客家)족 출신 총통을 뽑았더니 취임식도 남다르다"면서 "빨리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대만의 본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차이 총통은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 출신이다.

차이잉원(왼쪽에서 둘째) 대만 총통이 20일 취임식에서 대만의 독립과 민주화 투쟁을 상징하는 노래‘메이리다오(美麗島₩아름다운 섬)’를 부르고 있다. 이 노래는 1970~1980년대 대만 계엄령 시기엔 금지곡이었다.

이날 차이잉원 총통은 크림색 재킷에 검은색 바지를 입은 수수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취임 연설에선 중국이 강력히 요구해온 '92 공식'(九二共識·1992년 각자 국호를 쓰지만 '하나의 중국'은 인정하기로 한 합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해갔다. 참석자들은 차이 총통이 '92 공식'을 거론하지 않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다만 차이 총통은 "1992년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회담을 역사적 사실로 존중하면서 중국과 대화를 계속할 것"이라고는 했다. 또 "새 정부는 중화민국 헌법에 기초해 양안 간의 일을 처리해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중화민국 헌법 제4조는 대만 영토를 중국까지로 규정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높은 경제 의존도 등을 감안해 양안 관계의 파국을 피할 수 있는 절충적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반면 경제 분야에선 "단일 시장(중국)에 의존하던 과거와 고별하겠다"며 중국 일변도의 경제 정책에서 탈피할 뜻을 비쳤다.

취임식 마지막엔 타이베이 둔화(敦化)초등학교 합창단, 국립실험 합창단과 대만의 독립과 민주화를 상징하는 노래 '메이리다오(美麗島)'를 불렀다. 이 노래는 1970~80년대 대만 계엄령 시기엔 금지곡이었다. 차이 총통이 지휘하듯 손을 휘두르자 관중이 모두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관이 펼쳐졌다. 타이중에서 취임식을 보러 왔다는 옌충펀(55) 징이대학 교수는 "차이잉원이 취임식에서 대만은 중국과 뿌리도, 역사도 다른 독립된 나라라는 것을 알렸다"고 했다.

이날 취임식이 열린 광장 뒤편에선 시민 300여명이 모여 '대만 독립' 시위를 벌였다. 시민단체 17곳이 공동으로 개최한 이 시위에는 '대만 독립' '현상 유지는 사망 길' '타이완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다'고 쓰인 현수막 수백개가 발 디딜 틈 없이 세워져 있었다.

대만 차이잉원 총통 취임… '하나의 중국' 언급 없었다 - 20일 대만 타이베이시 총통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차이잉원(蔡英文·오른쪽) 신임 총통이 마잉주(맨 왼쪽) 전 총통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참석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차이 총통은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 출신으로, 대만 사상 첫 여성 총통이다. 차이 총통은 이날 취임사에서 중국이 강력하게 요구해온‘92공식(九二共識·1992년 각자 국호를 쓰지만‘하나의 중국’은 인정하기로 한 합의)’을 언급하지 않아 재임기 중·대만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중국은 차이잉원 총통이 취임사에서 92 공식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했다. 중국 정부는 이날 오후 발표한 성명에서 "대만의 새 지도자는 양안 관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다"며 "하나의 중국 원칙에 입각해 양안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아니면 두 개의 국가 혹은 대만 독립을 추구할 것인지 명확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성명은 이어 "오직 하나의 중국 원칙에 기초해야만 양안의 제도적인 교류가 비로소 가능하다"며 "우리는 어떤 형태의 대만 독립 시도도 결단코 저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초 성명에는 '천수이볜의 전철을 밟지 마라(以扁爲鑑)'는 경고도 들어 있었다고 미국의 중화권 매체인 둬웨이(多維)는 전했다. 천수이볜 전 총통은 임기 내내 대만 독립을 주장하면서 중국과 대립했다.

차이 총통은 '소수민족, 미혼 여성'의 핸디캡을 딛고 총통에 오른 인물이다. 아버지는 푸젠성 객가족이고, 친할머니는 원주민인 파이완(排灣)족 출신이다. 대만 국립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법학석사, 영국 런던정경대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만 정치대에서 교수 생활을 하던 중 2000년에 정계에 진출해 2006년 부총리, 2008년 민진당 주석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