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현철 경제부 차장

요즘 유럽에선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의 유럽중앙은행(ECB) 때리기가 화제다. 지난달 초 쇼이블레 장관은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약진하는 데 대해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에게 절반의 책임이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ECB의 초저금리와 양적 완화로 '쥐꼬리 이자'를 받게 된 독일 예금자들이 생활고에 빠지자 극우 정당이 이들의 불만을 파고든다는 지적이었다. 2013년 창당한 AfD는 지난 3월 독일 지방선거에서 반(反)유로, 반난민의 기치를 걸고 창당 이후 최고의 득표율을 올렸다.

1999년 유로화(貨) 출범 이후 독일의 금리 정책은 분데스방크가 아니라 ECB가 맡고 있다. 그러니 쇼이블레 장관의 드라기 총재 비난은 우리로 따지면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비난하는 것과 흡사하다. 다만 양쪽의 입장은 한국과 반대다. 우리나라에선 '한국형 양적 완화'로 돈을 풀자는 정부에 대해 한국은행은 신중하자고 한다. 반면 쇼이블레 장관은 초저금리를 독일 예금자를 괴롭히는 '사회악(惡)'이라고 비난하고, 드라기 총재는 적극적으로 돈을 풀자고 한다.

쇼이블레 장관이 ECB의 초저금리를 비난하는 건 사견(私見)이 아니다. 독일 재무부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루드거 슈크네히트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세계는 더 이상의 부양책이 필요하지 않다'라는 기고문을 실어 전 세계에 독일의 입장을 알렸다. 그는 "당장 급한 구조 개혁이 초저금리 때문에 늦춰지고 있다"며 "빚을 늘리고 예산 낭비를 부추기는 통화·재정 정책의 남용을 멈춰야 한다"고 했다.

이런 주장의 바탕에는 독일만의 특유한 경험이 깔려 있다. 독일인들 뇌리엔 2차 대전 전 '초(超)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 휴지 조각이 됐던 기억이 박혀 있다. 그래서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을 푸는 데 대해 극도의 거부감이 있다. 빚을 내 집을 사지 않기 때문에 초저금리를 반길 이유도 없다. 빚을 내서 집을 사뒀어야 금리가 떨어졌을 때 부동산값도 오르고 이자 부담도 줄 것 아닌가. 게다가 금리가 바닥이니 금융회사들은 돈 벌 기회를 잡지 못해 망가지고 있다. 독일의 자랑이던 도이체방크는 작년 68억 유로(약 9조원)의 대규모 적자를 냈다. 올해도 흑자로 돌아서긴 어렵다고 한다. ECB는 독일의 '초저금리 반대론'이 못마땅하다. 하지만 독일의 발목 잡기가 거세진다면 ECB는 운신의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당장은 '경제를 살리자'는 대의에 묻혀 은퇴 예금자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성실하게 저축해 돈을 모은 일부 은퇴자는 예금 금리가 1%대로 떨어지면서 노후에 대한 불안감으로 떨고 있다. 이들은 저금리가 무슨 도움이 되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들의 목소리가 독일처럼 커지면 저금리 정책은 지속하기 어렵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저금리의 그늘이 특정 부문이나 계층에만 집중되지 않게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