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4시 경기 수원시 아주대학교 율곡관 강당. 빨간 넥타이에 검은 양복을 입은 조코 위도도(55·약칭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입장하자 500석을 꽉 채운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로 맞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닮았다고 해서 '인도네시아의 오바마'로도 불리는 조코위 대통령을 본 고등학생들은 "진짜 오바마 닮았다"며 키득거렸다.
조코위 대통령은 이날 아시아기자협회(AJA)의 주선으로 아주대에서 열린 '청년들과 함께하는 유쾌한 반란' 토크콘서트에 특별 게스트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아시아기자협회로부터 '자랑스러운 아시아인상'을 받은 조코위 대통령은 '가난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대통령이 되기까지'라는 글귀가 적힌 대형 스크린을 배경 삼아 강연을 했다.그는 인도네시아의 시골 마을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빈민촌에서 성장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어린 시절 자신이 살던, 대나무로 엉성하게 만든 집이 세 차례나 강제 철거됐다고도 했다. 그는 "(이런 가난 때문에) 학교 다닐 때 친구들보다 공부를 잘해야겠다는 열망을 품게 됐다"며 "친구들이 2시간을 공부하면 나는 4시간을 공부했고, 친구들이 4시간 공부하면 8시간을 꽉 채워 공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우한 환경을 탓하지 말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다른 사람보다 열심히 살면 반드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강연을 듣던 학생들 사이에선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흙수저' 출신이라던데 정말인가 보네"라는 말이 나왔다.
조코위 대통령이 아주대 강연에 응한 것은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김동연(59) 아주대 총장의 사연을 듣고서다. 김 총장 역시 '흙수저 출신'이다. 김 총장은 청계천 판자촌에서 태어나 고학(苦學)으로 덕수상고와 국제대 야간대학을 졸업하고 입법·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줄곧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사업을 시작했을 때 자본이 없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2배 일했다"고 했고, "정치에 입문한 후 시민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으며 누구보다 부지런히 소통했고, 작은 도시의 시장(市長)을 거쳐 자카르타 주지사에 이어 인도네시아 최초로 직선제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선출됐다"고 했다. 대개 이런 내용의 강연은 젊은 청중들을 지루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의 강연은 달랐다. 그는 강연 도중 자신의 딸과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민호가 함께 찍힌 사진 한 장을 무대 뒤쪽의 대형 스크린에 보여주는가 하면, '서민 출신 첫 인도네시아 대통령' '직선제로 정권교체를 이룩한 대통령' 등 자신을 치켜세우는 얘기가 나올 때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한 나라의 리더가 됐는데 오늘날 청년들이 갖춰야 할 리더십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나에게 리더십이란 '듣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2005년 고향인 솔로시티 시장이 된 이후 늘 걸어서 마을을 찾아다니며 시민들의 불만을 직접 들었다고 했다. 그는 "듣고 소통하는 것이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진출을 희망하는 한 벤처 기업가에게 "사업이 안 풀리면 내 휴대폰 번호를 알려줄테니 직접 전화해라"고도 했다.
김 총장이 "학생 시절의 자신을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겠느냐"고 묻자, 조코위 대통령은 "나도 스무 살 때는 록·헤비메탈에 푹 빠져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며 레드 제플린·딥퍼플·메탈리카·퀸 등 유명 그룹의 이름을 하나씩 열거했다. 그는 "공부하는 것과 경험을 쌓는 것이 젊은이에게 중요하다는 당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방학이나 휴일에 컴퓨터 게임을 하지 말고 새로운 경험을 쌓기 위한 활동으로 채우면 좋겠다"고 하자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조코위 대통령은 이날 행사가 끝난 후 객석으로 가서 학생들 100여명과 일일이 악수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와 악수를 나눈 학생들은 "조코위 대통령이 한국 대선에 출마해도 되겠다"며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재치 있고 국민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대통령이 나오면 좋겠다"고 했다. 김 총장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조코위 대통령의 이야기가 무한경쟁 속에서 좌절하는 청년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