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모들 자식 농사 짓는 데 '비료' 참 많이 준다. 대입이란 '과실'이 단단히 맺히길 바라며 사교육이란 이름의 각종 '농약'을 잔뜩 쓴다. 좀 더딜지라도, 당장 보기엔 흠투성이라도 아이들이 건강한 결실 맺기까지 기다려줄 순 없는 걸까.
'금산주택', '산조(散調)의 집' 등을 설계한 부부 건축가 임형남(55)·노은주(47) 가온건축 소장은 딸 둘을 사교육 없이 길렀다. 아이의 힘을 믿고 공교육과 가정교육만 시켰다. 두 사람은 지력(地力·땅의 힘)을 믿고 화학비료 없이 농사짓는 유기농에 빗대 '유기교육'이라 부른다.
온갖 사교육 넘치는 서울 강남 한복판 압구정에 사는 가족의 교육 실험이라 더 눈길 간다. 두 딸은 청담초·중·고를 다녔다. 큰딸 가언(21)이는 미술에, 작은딸 지언(19)이는 글쓰기에 재능 있지만 입시 미술, 논술 교육은 따로 안 받았다. 입시가 코앞인 '고3' 때 가언이는 힙합 댄스를 배웠다. "몸 움직여야 스트레스 빠져나간다"고 부모가 먼저 권했다.
큰딸은 재작년 대입에 떨어진 뒤 지난해 쿄토조형예술대 만화학과에 진학했다. 작은딸은 지난해 대학에 낙방하고 '자발적 백수' 생활을 만끽 중이다. 부모님은 지언이에게 "아직 정신 못 차렸느냐"는 핀잔 대신 "천천히 하고 싶은 거 찾아봐라" 격려한다.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있는 가온건축 사무실을 찾아 '역발상 교육' 얘기를 들었다. 작은딸 지언이도 함께 했다.
삶의 여백 그리는 가족
―남들과 다른 교육법을 선택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임형남(임):"고등학교 졸업 후 3년 동안 놀았다. 대학(부부는 홍익대 건축학과 동창) 동기보다 나이가 많았다. 지금 보면 별반 차이가 없다. 놀며 배운 교훈이 있다. 심심할 때 창의적이 된다는 거다. '여백 있는 삶'이 필요한 걸 알았다. 아이들에게 '심심할 틈'을 주자고 생각했다."
―엄마 생각도 중요하다.
노은주(노):"'지금 참으면 나중에 행복해진다'면서 입시 지옥을 견디라 한다. 우리 생각은 다르다. '지금 행복해야 나중에도 행복하다'고 믿는다. 아이들이 '지금' 행복한 삶을 살게 하고 싶었다."
―다른 학부모를 보며 불안하지 않았나.
노:"다른 애들 엄마와 만나지 않았다. 얘기하다 보면 비교할 수밖에 없으니. 친구 만들어주려고 엄마들이 만난다는데 친구까지 부모가 세팅해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사회생활 할 때 회사 동료도 부모가 세팅해줄 순 없지 않나."
―늘 함께 다니나?
노:"지방 출장, 건축주 미팅에 늘 아이와 함께 갔다. 일하는데 개념 없이 식구 데리고 다닌다는 시선도 있었지만 그게 살아 있는 공부였다."
―같이 다니는 이유가 뭔가.
임:"초등학교 가니 아이 봐줄 데가 없더라.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학교 끝나면 사무실 옆 책상에 앉아 온종일 숙제하고 놀았다. 서비스 없기로 유명한 단골 중국집 주인이 '이렇게 몰려다니는 가족은 처음 본다'면서 군만두 한 접시를 서비스로 내밀더라."
임지언(지): "학교에서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란 질문이 있었는데 '부모님과 매주 토요일 조조 영화 보는 것'이라 적었다. 선생님께서 '우리 딸은 엄마랑 얘기도 안 하려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물으시더라."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가치가 뭔가.
임:"'충분한 수면, 즐거운 마음'. 우리집 가훈이다. 잘 자야 짜증이 없다. 큰애는 고3 때 오후 4시에 집에 와서 일단 잤다."
야간 학원? 아이에게 '투잡' 시키는 격
―학원 안 보내기 어려웠을 텐데.
노:"애들이 학교에서 오후 6시쯤 왔다가 7시에 학원 가 자정까지 있더라. 어떻게 보면 '투잡' 뛰는 거 아닌가. 어른도 투잡 뛰면 힘든데 애들은 얼마나 힘들겠나. 돈도 아까웠다. 그 비용으로 다른 문화생활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임:"건축가라 직업적으로 환경을 본다. 학원은 대피 시설도 제대로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밖을 못 내다보게 창도 막아버린다. '먹방(창 없는 방)'은 성장기 아이들 건강에도 안 좋다."
―큰딸이 '미술 영재'였다는데도 미술 학원을 안 보냈다.
임:"그림이 대학 들어가는 도구가 되어버리고 유일한 특기에 흥미 잃을까봐 두려웠다. 인생을 길게 보면 미술로 대학 가는 것보다 즐겁게 그리는 게 더 중요하다. 대신 아이와 미술사 강의, 인문학 교양 강좌 등에 갔다."
―두 아이 모두 입시 첫해에 낙방했다.
노:"첫째는 서울대·홍익대·이화여대 미대에, 둘째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도전했다. 성적은 중간 정도였는데 이왕 떨어질 거 좋은 대학이나 쳐보자고 했다. 입시날 보니 딴 애들은 울상인데 우리 애들만 해맑게 웃고 나오더라. 실기 시험 준비하질 않았으니 신기하고 재미있었단다. 떨어졌을 때도 우리끼리 '인재 못 알아본 그 학교가 손해'라며 웃어넘겼다."
―첫째가 결국 대학에 갔다.
임:"재수 학원은 안 다녔다. 학교 안 가는 걸 마냥 행복해했다. 굳이 대학 갈 필요는 없다는 게 우리 생각이기도 했다. 그런데 하루는 대학 들어간 친구들이 '과잠'(학과 점퍼) 입은 게 부럽다고 대학 가야겠다더라. 혼자 알아보더니 만화 좋아하던 친구가 일본으로 만화 유학 갔단 얘기를 했다. 마침 일본 출장이 생겨 애를 데리고 갔는데 애가 일본어를 술술 하더라. 어렸을 때부터 '만화덕'(만화 오타쿠)이었는데 일본 만화 보러 일본어를 독학한 거였다. 유학비는 그 사이 사교육에 안 쓰고 모은 돈이라 생각했다."
'지금'을 즐기는 가족
―집에서 부모님은 어떠신가.
지:"부모님이 늘 집에서 책을 읽으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빠가 사무엘 베게트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으시면서 '이런 거 너도 읽으면 되게 멋있어 보인다' 하시더라. 그 말에 혹했다. 그때 책장에 꽂힌 파우스트, 톨스토이 단편집을 읽었다."
―친구들이 학원 안 다닌다고 부러워하지 않았나.
임:"초등학교 3학년 때 학원 안 다닌다니 친구들이 '너 그게 자랑 아니야' 하더란다. 꼬마들 눈에도 '비정상'으로 보였다는 거다."
지:"친구들이 부럽다고 말한 적은 없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니까. 난 그저 곧 사라질 '지금'을 부모님과 즐겁게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