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소년들의 성(性)인식과 성(性)문화는 이성교제와 함께 더욱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성교제를 하면서 포옹이나 키스 등 진한 스킨십을 한다는 학생도 적지 않다.

벌써 6년 전 연구 결과인 2010년 서울사회복지대학원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청소년의 이성교제 실태 및 의식에 관한 연구'만 보더라도 조사대상인 경기도 지역 중학생 400명 중 53%가 이성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있거나 현재 사귀고 있다고 답했다. 초등학생들도 10명 중 3명이 이성 친구를 사귄 적이 있을 정도(서울시립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가 2010년 서울 지역 초등학교 6학년 1245명 설문한 결과)로, 이성 교제의 시기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별다른 성교육없이 청소년 간의 이뤄지는 이성교제와 스킨십, 성적 접촉은 그릇된 성(性)인식과 성(性)역할을 심어준다. 2012년 학생들에게 성교육을 하는 강사 A(31)씨는 경기도 지역 중학교 1학년 남학생 30여명을 가르치다가 여러 번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A씨가 "남녀 사이에 성(性)하면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롭게 말해보라"고 하자, 학생들이 낄낄거리며 "집단플레이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 남학생은 "'하의 실종'으로 다니는 여자들은 성폭력 유발자"라고도 했다. A씨는 "음란물의 영향 때문인지 여성을 폭력적으로 다루는 것을 당연시하는 학생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것들을 청소년 시기에 바로 잡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성교육이다. 하지만 교육부에서 만든 성교육 매뉴얼에는 황당한 것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올해 새롭게 발간된 것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몇해 전부터 현실성 없고 황당한 내용들이 있다.

2012년, 초·중 교과서에 실린 황당 성교육

위 내용은 2012년 기준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체육 또는 보건 교과서 내에 적혀있는 성교육 내용의 일부이다. '괴한이 덮칠 때는 침을 흘려서 혐오감을 줘라'라는 황당한 내용이 적혀 있거나 '호신술을 이용하여 상황을 빠져나오라'고 알려준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학생에게 성적 위협이나 성폭행을 피하기 위해서 가해를 하려는 사람에게 심리적 혐오감을 주거나 그들의 폭력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호신술을 사용하라는 조언은 현실성이 없다. 가해자들이 더 힘이 센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을 더 위험한 상황으로도 빠뜨릴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성 충동은 일시적인 것이니 예술적인 활동을 통해 벗어나라', '이성과 만날 때는 유익한 대화만 하라'는 등의 현재 청소년의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요즘 청소년이 얼마나 많은 매체와 환경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교과서적인 성교육으로는 수박 겉핧기식 수업이 이뤄질 수 밖에 없다.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배우는 성 지식은 지루하고 소용없다는 인식만 심어줄 뿐이다. ▶관련기사  : "성충동은 예술로 승화" "이성교제는 벤치에서"…황당한 청소년

6억 짜리 성교육 핵심은 "무조건 안하면 됩니다"

교육부가 내놓은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 적혀있는 성폭력, 데이트폭력 대처 방법

교육부는 2015년 3월 6억원을 들여 초·중·고 학생용으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만들었다. 성교육 표준안은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 나이에 맞춰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성교육 지침을 말한다. 그해 9월에는 '청소년 교육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은 부분과 오·탈자, 띄어쓰기 오류 등 150곳을 고쳐 개정안을 냈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내용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 강북의 한 고등학교 보건 교사 A(여·49)씨는 이달 초

성교육을 진행하다 진땀을 흘렸다. A씨는 남녀 학생 단둘이 집 안에서 TV를 보고 있는 그림을 보여주며 "이럴 때 성폭력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하고 물었다. 학생들의 대답은 주로 "다른 친구를 불러요"라거나 "수시로 부모님한테 전화해요"였다. 하지만 교사용 지도안에 나온 정답은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였다. A씨는 지도안에 나온 대로 학생들에게 얘기했다가 "당연한 얘기 아니냐"는 야유를 받았다.

친구들끼리 여행을 갔다가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친구들끼리 여행가지 않는다'고 돼 있다. A씨는 "하나마나 한 얘기로 학생들에게 무시당하는 성교육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성폭행 막으려면 남자랑 둘이 있지마라?]

교육부 웹사이트에 올라온 '학교 성교육 표준안' 보조교재 자료. 남녀 간의 성적 반응 차이에 대해 성차별적이고 잘못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교육부가 웹사이트에 올린 시청각 보조교재 자료를 보면, 남녀 간 고정적인 성 관념이나 차이를 부각시키거나, 마치 남성은 항상 성에 굶주려 있고 여성은 판단력이 미약한 존재로 묘사한 내용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중학생용으로 작성된 자료에는 남녀 성적 반응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남자는 '성기 자극과 눈에 보이는 성적 자극' 두 종류에만 반응한다"고 기술했다. 하지만 여자는 "심신 상태, 친밀감, 자극, 환경, 체력, 취향 등에 따라 반응한다"고 설명하면서 "여자는 무드에,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성교육 전문가들은 "지극히 성차별적인 데다 심지어 틀린 내용"이라고 지적한다. 서울의 현직 보건교사 A씨는 "남자는 동물적인 본능에 충실하고, 여자는 감정적이며 의지가 나약하다는 전근대적 성 관념에 기반한 구분"이라며 "섬세한 남학생, 적극적인 여학생 등 개인차가 존재하는데 남녀 성에 대한 이분법적 편견을 조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도 담겼다. 예컨대 중학생용 성교육 교재 '성 욕구의 조절' 단원에서는 "어른이 되어 결혼할 때까지 성관계를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우리나라의 초혼 연령(서울시 기준)이 남자는 33세, 여자는 31세라는 현실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경기대 김대유 교수(교육학과)는 "성교육 교재가 지나치게 '금욕'에만 초점을 둬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남녀 고정 성역할의 벽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만큼 학교에서부터 현실에 맞는 성교육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남자, 누드에 약해"… 교육부 황당 性교육 여전

외국 성교육, 어떻게 이뤄지나

그렇다면 해외 국가들의 성교육은 어떻게 이뤄질까. 우리보다 솔직하고 정확한 내용을 바탕으로 유아 시절부터 실생활 일어날 수 있는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교육하는 경우가 많다.

스웨덴
북유럽 국가, 그 중에서도 스웨덴은 성교육은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될 정도로 잘 이뤄지고 있다. 이미 1897년부터 성교육을 시행해온 스웨덴은 성교육이 가장 발달해 있고 세계에서 최초로 성교육을 전 아동에게 의무 교육화시킨 나라다. 만 4세부터 연령별 맞춤 성교육을 받고, 15세가 되면 부모는 자녀에게 피임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화를 나눈다. ▶관련기사 : 솔직·정확한 '북유럽 성교육'을 소개합니다

성을 생명의 산실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역시 스웨덴 성교육의 특징이다. 얼마 전 유투브에 올라와 화제가 된 스웨덴의 유아용 성교육 영상만 보아도 아이들이 성을 친근하고 쉽게 받아들이도록 묘사할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중학교 때는 무료로 콘돔을 나눠주고 실질적인 피임 기술을 가르쳐 아이들에게 올바른 성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지도한다. 정자와 난자는 어떻게 만나는 것인지 구체적인 설명조차 꺼리는 우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독일
독일의 성교육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에게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을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성이 음지의 영역에서 다뤄지는 호기심과 자극의 대상이 아닌, 생명의 시작임을 알려준다.

피임법이나 성병과 관련된 지식도 초등학교 때부터 구체적으로 알려줘 부족한 성지식으로 생길 수 있는 이른 나이의 임신과 성병 등을 예방할 수 있도록 한다. 어리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몰라야 한다며 감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서 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도록 정확하고 올바른 정보를 주는 것이다. 또한 성교육이 보건 시간에 일부 주제로만 다뤄지는 우리와 달리 독일은 성교육 독립적인 하나의 교과로 분류되어 있다.

미국

미국의 성교육 인형. 아기는 실제 아기처럼 한시간 간격으로 운다. 울 때마다 아이가 우는 이유를 찾에 해당 카드를 아기 뒷편에 꽂아줘야 한다.

우리보다 개방적인 청소년 성 문화를 가지고 있는 미국은 10대의 임신, 낙태, 성병 등 무분별한 성생활로 인한 사회문제도 큰 편이다. 미국은 종합보건교육법을 제정해 유치원부터 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살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미국답게 각 주마다 조금씩 다르다.

지역에 따라 학생들이 익명으로 성에 대해 질문하면 답해주는 제도를 마련해놓고 있다. 또한 피임, 낙태, 성병 등의 주제는 부모의 동의를 받은 학생들에 한해 가르치는 등 가정의 교육관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뤄진다.

미국 성교육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아기 인형을 키우는 실습을 하면서 피임의 중요성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하여금 성생활과 부모로서 책임감까지 교육한다는 점이다.

해외 여러 나라의 성교육에서 빠지지 않는 건 '정확한 정보'와 '책임감'이다. 무조건 성관계를 억제하고 감추려하기 보다 솔직하게 얘기해 다른 경로로 잘못된 성지식이 쌓이는 걸 방지하자는데 초점을 맞춘다. 동시에 자신의 성에 대한 책임감과 올바른 가치관을 알려주어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사실적인 성 지식에 대해 오해하지 않도록 가르친다. 하지 말라는 말보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부모가 된다는 게 얼마나 엄중한 일인지를 가르치는 게 더욱 효과적인 교육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