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북한 비핵화와 미·북 평화협정의 병행협상'을 제안하면서 새삼 '미·북 평화협정'이 북한 핵 문제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면서 사상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라던 UN 안보리 결의 2270호와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에는 다소 소홀해지는 듯하다. 그러나 실은 '미·북 평화협정으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정착시키자'는 것은 북한이 핵을 개발하면서 항상 병용(倂用)해오던 카드다.
말이 좋아 '평화협정'이지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협정의 핵심은 '주한미군 철수'다. 만약 합의가 되면 우리 전통적 안보체제의 근간(根幹)을 통째로 허물고 뿌리부터 재구축해야 하는 엄청난 부담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고 국가 안보에 치명적 위험을 자초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욱이 중국은 압록강 건너 바로 붙어 있고 미국은 멀리 태평양 너머에 있다. 주한미군이 없어도 한반도의 전략균형이 가능할까? 한반도 전체가 점차 중국의 배타적 영향력하에 들게 될 가능성이 더 크지 싶다. 그러니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를 알 만하다. 무엇보다도 미·북 평화협정만 맺으면 북한이 정말로 핵을 폐기할 것이냐? 절대로 아니다. 6자회담 내내 그래 왔듯이 또다시 북한의 핵미사일 체계를 완성하는 시간이나 벌어주고 말 것이 분명하다.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표현의 본의가 살려면 적어도 북한이 한국과 평화공존 하려는 의지라도 명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껏 '적화통일을 포기한다'는 말조차 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1994년 북한 외교부 담화를 비롯해서 항상 '북한의 평화체제 구축 대상은 미국'이라고 못을 박아 왔다. 그렇다면 한국은? 평화의 대상이 아니라 적화통일의 대상이라고 명시(明示)한 셈이다. 많은 전문가가 북한의 평화협정 공세를 한·미 동맹 와해 전술로 보는 이유의 하나다.
그런데도 중국은 계속 주창(主唱)한다. 여기에 미국조차 존 케리 국무장관까지 '북한이 비핵화에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한다면 논의할 수 있다'는 식의 반응을 내놨다. 그렇다면 더욱더 이 문제를 우리가 주도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비핵화 논의가 우선'이고 '평화협정도 한다면 미·북이 아니라 한국이 주도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단호한 태도는 매우 다행스럽다.
그런데 뜻밖에 우리 사회 일부가 북한의 기대에 호응하고 나섰다.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 석좌인 마이클 그린 조지타운대 교수가 최근 워싱턴의 한 세미나에서 "예상과는 달리" "일부 한국 측 발언자는 중국의 주장을 상기시켰다"며 놀라워했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은 강력한 대북 제재로 북한에 '핵·경제 병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 우선이지 진행 중인 대북 제재의 김을 빼고 북한의 시간 벌기나 도와줄 때가 아니다. 지금도 북한은 '핵은 기정사실화하고 평화협정만 맺자'는 식이다. 이런 때 함부로 북한과 중국의 기대를 부추기고 우방의 오해나 사다가 자칫 핵을 보유한 북한과 미국 사이에 평화협정이 이루어질지 모른다. 그랬다간 그야말로 적화통일로 가는 탄탄대로 위에 서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