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진 시장은 안동 출신에 대구에서는 고등학교만 나왔다. 서울에서 내내 정치활동을 한 권 시장은 대구에서는 ‘무명(無名)’이라면 무명이었다. 게다가 그와 대구 시장 선거에서 경합한 야당 김부겸 후보는 40% 넘게 득표했다. 대구 시민이 새누리당 독주 체제에 얼마나 넌더리를 냈던가를 알리는 가장 확실한 지표였다.

역대 최연소 대구 시장에 당선된 그는 취임 후 1년 이상을 대구 시민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시정을 장악하는 데 시간을 썼다. 권 시장은 ‘니가 대구에 대해 뭘 알겠노’라는 분위기를 넘어서려면 발로 뛰는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칠성 시장 등에서 ‘현장소통 시장실’이라는 문패를 내건 길거리 좌판을 여러 번 깔았다.

대구 시민과 안면을 턴 권 시장은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인 해외 대구 세일즈에 나섰다. 지난해 9월 위스콘신주 밀워키시와 물산업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같은 해 10월엔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을 찾아 자동차 기업 르노와의 협력서를 들고 왔다. 지난 1월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 전자쇼인 CES를 참관했다. 상하이, 샤오싱, 충칭, 우한 등 올해 상반기에만 두 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권 시장은 동남권 신공항 문제에 대한 해법을 묻자 허리를 곧추 세우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는 “부산시의 가덕도 신공항 발상은 소아병적인 발상”이라면서 “부산 정치권이 중앙 정부의 용역 결과에 따르겠다는 합의를 무시하고 정치에 공항 이슈를 이용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대구가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1인당 GRDP(지역내 총생산)가 전국 최하위다. 20년 넘게 전국 꼴찌를 맴돈다.

"맞다. 현실을 부정하면 안된다. 그런데, 1인당 GRDP 최하위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봐야 제대로 변화하고 긍정의 에너지도 모을 수 있다. GRDP는 전체 지역 총생산을 인구 250만명으로 나눈 것이다. 대구에 이어 광주, 대전, 부산이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광역 단체들이 대부분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1992년부터 추진한 국가 산업단지 위천 공단이 결국 무산되고 1970년대 지어진 공단들은 노후화하다보니 생산 기반이 약해졌다. 대구에는 ‘앵커 기업(지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 없고 중소기업이 대부분이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부족해서 타지로 가야 한다. 그렇다고 이게 대구 실력이냐면, 그건 아니다. 대구 소득 수준은 전국 6위다. 대구 출신들이 경산, 창원, 구미, 울산에서 일해서 가져오는 돈이 연간 10조원이다.

좋은 땅에 공단을 유치해 GRDP를 올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경산, 왜관, 성주, 고령 등에 생산 시설을 포진시키고 대구는 경북의 교육, 비즈니스, 문화, 의료 의 중심도시가 되는 것도 훌륭한 전략이다. 앞서 언급한 친환경 신사업을 중심으로 기업을 키우면서 경북 전체의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면 대구가 교육, 비즈니스, 문화 중심 도시가 될 것이다.”

-구미(대구 인근 공업도시)와 광주는 최근 수년 간 삼성전자 공장이 빠져 나가면서 지역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들린다.

“인건비가 비싸다고 중국, 베트남으로 가는 대기업을 유치해서, 다시 말해서 인건비 따먹기 하는 대기업을 유치해서 얼마나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까. 나는 오히려 지역에서 대기업을 만드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미래형 자동차도 처음부터 대기업의 큰 공장을 유치하는 전략으로 가면 안된다고 본다. 시장이 열려 있지 않고 앞으로 비즈니스 환경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데 시설투자부터 하는 바보같은 대기업이 있을까. 작게 시작하더라도 지역에서 큰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광주도 기아자동차 공장이 있어서 미래형 자동차에 관심이 많다. 현대기아차가 수소 연료 자동차를 전략적으로 육성한다고 하지만, 당장 수십 만대 생산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도시가 테스트베드를 만들어 초기 시장을 만들어주는 전략을 써야 할 것이다.”

-대구시와 광주시가 ‘달빛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민관 협력에 나섰다.

“2015년 5월 18일 대구와 광주 두 도시의 민간 교류 확산을 위한 달빛동맹민관협력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제 두 도시의 교류는 인적, 문화적 교류를 넘어서 경제 동맹으로 발전하고 있다. 앞서 말한대로 광주는 수소 연료 자동차에 관심이 많고 우리는 전기차와 자율형자동차에 관심이 많다. 차기 국회가 열리면, 광주시 국회의원들과 대구시 국회의원들이 ‘미래형 자동차 육성을 위한 특별법’을 공동발의할 것이다. 규제 완화, 인프라 지원에 관한 특례 조항까지 포괄한 법이다. 영호남 갈등 속에 지방은 다 죽었다. 수도권만 비대해졌다. 우리가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모른다. 왜 영호남 갈등하나. 이제 손을 맞잡고 지방화 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 두 지역의 동맹을 더 탄탄하게 할 것이다. 윤장현 광주 시장, 이낙연 전남 지사, 김관용 경북 지사 등 4자가 수시로 만난다.”

-좋은 기업이 없으니 인재가 빠져나가고 인재가 빠져나가니 지역 대학도 활기를 잃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대구 지역 기업이 서울 기업에 넘어가면서 “‘대구꺼’가 그립다”는 칼럼이 지역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나는 대구가 인재들을 키워 수도권과 해외에 보내는 것을 배아파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인재들이 지역에 또아리를 틀고 있으면 그 도시가 커나갈까. 전국으로, 세계로 뻗어가야 한다. 문제는 커간 인재들이 대구의 힘으로 모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구 출신의 기라성같은 사람들이 정치, 경제 그리고 세계에서 움직인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을 대구의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업을 유치할 때, 해외에서 대구를 세일즈할 때 대구 출신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엔바이오컨스는 대구 출신이 만든 회사지만, 수도권에 자리 잡은 회사다. 그런데 이 회사가 대구 물 산업 클러스터로 본사를 이전하겠다고 한다.

최근 대구 출신들이 대구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고향 대구를 이대로 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것도 나는 크게 달라진 것으로 본다.”

-지도자는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을 통해 시민에게 희망을 주고 평가받는다. 최근 동남권 신공항을 가덕도에 두느냐, 밀양에 두느냐의 문제로 대구시와 부산시가 갈등하고 있다. 해결 방법이 있나.

“동남권 신공항이 왜 필요하냐부터 따져보자. 지난 십수년 동안 수도권 단일 경제 공동체만으로는 대한민국이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항공물류 시대에 세계로 뻗어가는 지방 도시를 육성하려면 남부권 신공항이 필요하다. 부산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는 데 좀 편하게 하려고 신공항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영남권 5개 광역단체의 미래를 위한 공항이다.

부산시가 주장하는 ‘가덕도 신공항’은 대한민국의 미래, 영남권의 미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새 공항은 영남권 전체를 위한 허브 공항, 항공 물류도 가능한 공항이 되어야 한다. 가덕도 공항은 당장 인천공항 가는 것만 못한 공항이다. 그런 공항을 영남권 공항이라고 하면 대구, 경북, 경남, 울산 누구도 동의할 수 없다.

부산 정치권은 반칙하는 것이다. 작년 1월 19일 5개 단체장들이 경쟁하지 말고 중앙 정부의 용역 결과를 믿고 수용하자고 합의했다. 4.13 총선 전까지는 잘 지켜왔는데, 총선 좀 어렵다고 신공항 이슈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영남권 미래가 달린 문제를 저렇게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나. 다른 4개 단체장들은 동남권 신공항 무산 전철을 밟을까 걱정하기 때문에 맞대응하지 않을 뿐이다.”

- 서병수 부산 시장은 부산과 대구의 ‘윈윈(Win-win)’ 카드도 꺼냈다. 가덕도 신공항 규모를 줄여 국제공항 기능만 가져오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동남권 신공항에 투입될 예산을 나누면 부산과 대구 모두 신공항 유치의 핵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말도 안된다. 공항이 무슨 KTX 역사인가. 울산은 뭐고 경남은 뭐가 되나. 이건 대구와 부산의 문제도 아니다. 신공항 다른 후보지인 밀양은 대구도 아니고 경상남도에 위치한 곳이다. 울산에서도 20분 거리다. 활주로 1개뿐인 가덕도 공항을 만든다고 부산의 미래가 밝아질까. 부산이 잘 되려면 해양 물류 도시로 커야 한다. 내가 부산 시장이라면 상하이와 경쟁해야 비전을 설계할 것이다. 대한민국 2대 도시 정도의 꿈이 부산의 꿈이 되어서는 안된다. 지금이라도 부산시는 중앙 정부의 용역결과를 수용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이번 4.13 총선으로 여소야대, 3당 체제가 됐다. 대구에서도 야당 의원이 당선됐다.

“선거를 보면, 공천을 잘못한 탓이 크다. 과거에도 이런저런 잘못을 한 경우가 많았지만, 새누리당이라면 당선시켰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건 명확한 민심 변화다. 내가 시장에 당선될 때부터 대구 민심에는 거대한 변화가 있었다. 새누리당은 그걸 읽는 데 둔감했다. 변화한 민심에 따르면, 이번 선거 결과는 상식에 가깝다. ‘이대로는 안된다’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1당 독주 체제가 아니라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라는 게 민심이고 이번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여권에서는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이 대권 후보에 나올 것이다, 시장과 같은 젊은 세대들이 새 리더십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라는 시각이 있다.

“내가 대권과 관련해 평가할 위치는 아니다. 새누리당이 다시 국민들로부터 국가 경영을 수임을 받으려면 당내외 새로운 정치 에너지를 잘 모아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 것 같다. 외부에서 걸출한 분을 모셔오는 것은 시대적 소명이나 국민의 명령, 민심과는 조금 다르지 않냐는 것이 내가 보고 있는 민심이다. 어려운 지방 살림을 챙기고 미래를 열어가야 하는 입장에서 대권 문제에 깊이 개입할 수 없고 많은 역할을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대권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

“도시의 꿈은 그 도시 리더의 꿈과 같이 커가는 것이라고 본다. 광역단체장이 그 도시의 힘을 바탕으로, 그 도시의 변화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이 없다면 광역단체장으로서의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나는 대구시장만이 목표다’는 도시엔 희망이 없다.

아직까지는 내 개인적인 대권 행보를 할 수 있는 여건도 안되고 해서도 안된다고 본다. 나는 적어도 8년 정도는 대구의 성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반드시 대구를 성공시키고 대구를 희망의 도시로 만들면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 반드시 나를 불러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불러주지 않으면 안하는 거다. 아니, 못하는 거다. 성공한 시장이 대통령의 꿈을 꾸고 국가 경영의 꿈을 꾸는 것, 그런 시장과 함께 하는 시민들이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그 꿈을 이야기한 것이지, 내가 지금 대권 행보를 하는 것은 아니다.”

- 멘토는 누구인가.

“나는 남을 통해서 많이 배운다. 오늘은 인터뷰라 말을 많이 하지만, 사람들이 있는 데서는 거의 듣는 편이다. 뒤에서 전략을 잘 하는 참모나 제갈량 같은 데 의지하는 시대는 지났다. 책사가 있냐고 하면 나는 없다. 그리고 정치인한테 가장 중요한 멘토는 시민과 국민이다.

실제로 대구 시장이 되고 난 이후 나늘 지지했던 사람,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 새누리당에 비판적이었던 사람을 시정에 참여시키고 있다. 그리고 권영진을 활용해 당신이 실현해보고 싶었던 꿈을 실현해보라고 기회를 드린다.

내가 전지전능한 사람도 아니고, 마이다스의 손도 아닌데, 시장 혼자서, 지도자 혼자서 어떻게 꿈을 실현해나가겠나. 세상은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