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주, 최룡해, 리수용.

36년 만에 열린 북한 노동당 제7차 대회는 9일 김정은에게 '조선노동당 위원장'이란 새 감투를 씌워주고 정치국 상무위원 등 당 지도부를 확정하는 것으로 폐막했다.

북한은 당 대회 개최를 앞두고 '휘황한 설계도'와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했지만 실제 공개된 정치·경제·대남 정책들은 기존 노선의 재탕에 불과했고, 새로 구성된 노동당 지도부 역시 김일성·김정일 시절의 구시대 인물들이 주축을 이뤘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 시대' 선포를 위해 열린 이번 당 대회는 낡은 흑백사진을 보는 느낌"이라고 했다.

김일성 시절 연상시키는 '당 위원장'

김정은이 이날 당 규약 개정을 통해 신설된 당 위원장직에 추대되면서 기존 '당 제1비서직'은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제1비서나 당위원장 모두 '당 최고 수위(首位)'인 것은 마찬가지"라며 "간판만 바꿔 달았을 뿐 본질은 똑같다"고 했다.

당 위원장은 할아버지 김일성이 맡았던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직을 연상시킨다. 과거 김일성은 1949년부터 당중앙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북한을 통치했으며 '김일성 선집' 등엔 이 자리를 '당 위원장'으로 줄여 쓴 표현이 등장한다. 이 자리는 1966년 제2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일성이 당중앙위원회 총비서에 선출되며 폐지됐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은이 67년 전 김일성 자리에 오른 것이자 당 중앙위원장직을 (1966년 폐지 이후) 50년 만에 부활시킨 셈"이라며 "김일성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겠다는 의도"라고 했다. 일본 NHK방송도 "(김정은이) 김일성 주석을 뒤따르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백마 탄 김정일과 어린 김정은… 평양 혁명사적관에 사진 내걸려 - 어린 시절 김정은(오른쪽)이 아버지 김정일과 평양 인근에서 승마를 즐기는 모습이다. ‘김씨 부자’가 나란히 백마를 타고 있다. 촬영 시기는 김정은이 7~8세이던 1990년쯤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3대 세습’ 프로젝트는 일찌감치 가동됐는지도 모른다. 김정은은 9일 현재 자신의 ‘대관식’ 격인 노동당 7차 대회를 치르고 있다. 승마를 좋아했던 김정일은 1992년 말을 타다가 떨어져 쇄골이 부러지고 의식을 잃는 중상을 입은 적이 있다. 김정은도 2013년 10월 평양의 군 승마장을 확장해 미림승마장을 만들었다. 이 사진은 평양 인근의 한 혁명 사적관에 걸린 것이다. 중국의 북한 소식통이 최근 찍어 본지에 제공했다.

[북한, BBC 취재진 사흘 억류했다가 추방]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노동당은 위원회가 아니므로 '당 위원장'이라는 표현은 말이 안 된다"며 "상식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북한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했다. 이날 김정은은 당중앙위원회 위원,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위원, 당중앙군사위원장 등 기존 당직에도 다시 선출됐다.

최룡해 재기, 리수용 신분 상승

이날 새로 구성된 당중앙위원회는 전원회의를 열어 노동당 수뇌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5명을 선출했다. 김정은(32), 김영남(88)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황병서(76)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기존 멤버 3명 외에 박봉주(77) 내각총리와 최룡해(66) 당 비서가 새로 뽑혔다. 김정은을 빼면 모두 김일성·김정일 시절부터 30~40년째 요직을 맡아온 인사들이다.

최룡해로선 2014년 총정치국장에서 해임돼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강등된 지 2년 만에 상무위원으로 복귀했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작년엔 잠시 실각도 했는데 오뚝이처럼 일어섰다"며 "다시 중책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최룡해의 아버지 최현은 일제 시대 김일성과 활동했던 인물이다. 당 중앙위원회는 이와 함께 정치국 위원 19명과 정치국 후보위원 9명을 선출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리수용 외무상은 후보위원에서 위원으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 스위스 주재 북한 대사를 30년간 지낸 리수용은 1990년대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생활을 뒷바라지한 인연으로 김정은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다.

현재 북한 정권의 '2인자'로 불리는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29)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은 이번에 정치국에 들어가지 못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여정이 2인자 지위를 유지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도 64세가 돼서야 정치국 위원이 됐다"고 말했다. 나머지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 비서국 비서들의 명단은 이날 공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