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교포 제임스 한(35)은 지난 2월 페블비치 프로암부터 지난주 취리히 클래식까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8개 대회에서 연속으로 컷 탈락했다. 신발 가게 점원 출신인 그는 지난해 2월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하며 '신데렐라'가 됐지만 끝 모를 부진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만두고 다시 구두를 팔아야 하나?'

9일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퀘일할로 골프클럽(파72·7575야드)에서 열린 웰스파고 챔피언십 마지막 4라운드. 제임스 한은 최종합계 9언더파 279타로 로베르토 카스트로(31·미국)와 연장전에 들어갔다. 이 대회는 저스틴 로즈(8언더파·3위), 필 미컬슨·로리 매킬로이·리키 파울러(7언더파·공동 4위) 등 쟁쟁한 스타 선수들이 출전해 제임스 한의 선전을 예상하는 이는 적었다. 그는 이날 7번 홀(파5)에서 약 15m 이글 퍼트에 성공하는 등 이글 1개, 버디 3개, 보기 3개로 2타를 줄였다.

고마워, 기다려줘서 - 직전 8개 대회에서 연속으로 컷 탈락한 제임스 한은 다시 구두를 팔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내는 남편의 꿈을 응원하며 묵묵히 기다려줬다. 우승을 확정 지은 그가 딸 카일리를 안은 아내 스테파니에게 다가가 입 맞추는 모습.

18번홀(파4)에서 열린 연장 1차전에서 제임스 한이 우승을 차지하는 과정에 공교롭게 '가죽 구두'가 소품으로 등장했다. 카스트로는 첫 번째 티샷을 개울에 빠트린 뒤 1벌타를 받고 친 다음 샷도 갤러리 얼굴에 맞더니 누군가 벗어 놓은 구두 속으로 들어갔다. 잇따른 실수에 당황한 카스트로는 구두 속 공을 꺼내(무벌타) 어프로치 샷을 했지만 보기를 하고 말았다. 제임스 한은 파를 지키며 우승을 차지했다.

두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간 제임스 한은 2003년 프로에 데뷔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제대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 캐디 피를 감당하기에도 벅찼던 그는 백화점 신발가게, 부동산 중개업, 광고회사 등을 전전했다. 15개월 만에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린 그는 아내 스테파니와 14개월 된 딸 카일리를 뜨겁게 껴안았다. 그는 "'생계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골프에만 전념하라'고 말해준 아내의 내조 덕분"이라고 했다. 제임스 한은 우승 상금 131만4000달러(약 15억3600만원)를 거머쥐었고 세계 랭킹도 지난주 134위에서 55위로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