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은행권과 비은행권의 가계부채를 모두 합하면 1207조원으로 GDP(국내총생산) 대비 77%,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로는 144% 수준입니다.

가계부채가 소득보다 빠르게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은 기업 대출에 집중하던 금융권이 기업 부실로 초래된 외환위기를 겪고 나서 좀 더 안정적인 수익처인 가계로 눈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가계도 부동산 붐이 일면서 집을 사려고 가계대출 수요를 크게 늘렸습니다.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도 이 추세를 부추겼습니다. 최근 들어 가계부채가 경제를 위협하는 요소가 된 이유를 알아보고, 그 해결책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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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빚은 가계 안정과 파산 위험의 '양날의 검'

대출을 받는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미래에 발생할 소득을 미리 당겨 쓰는 것입니다. 소득이 많을 때 저축을 하고 소득이 모자랄 때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면 소득이 급변하더라도 쓰는 돈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므로 가계를 안정적으로 꾸려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가계부채가 이렇게 돈을 버는 시점과 쓰는 시점 사이의 괴리를 메워주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위험 자산에 투자할 수 있게 하는 수단으로 쓰인다면 문제는 매우 복잡해집니다.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가계부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서는 그 위험성이 비교적 최근에야 인식되고 관리되기 시작했습니다.

대출을 받아 투자하는 행위를 흔히 '레버리지(leverage)를 쓴다'고 말합니다. 레버리지는 '지렛대의 힘'을 뜻하는 데 자기 돈을 조금 넣고 남의 돈을 많이 빌려서 큰 금액의 투자를 실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자기 돈 1억원과 빌린 돈 9억원을 합해서 10억원을 만들어 아파트를 사면 레버리지 비율이 자기 돈 대비 10배가 됩니다. 이때 아파트 가격이 1억원 오르면 자기자본이 1억원이니까 자기자본 수익률이 100%가 되고, 반대로 아파트 가격이 1억원 내리면 자기자본에 대한 수익률은 -100%입니다. 만약 아파트 가격이 1억원보다 더 많이 내려가면 자기자본을 건지는 것은 고사하고 아파트를 팔아도 대출을 갚지 못하는 파산 상황이 닥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남의 돈을 많이 빌려 투자하는 것, 다시 말해 레버리지를 많이 쓰는 것은 본질적으로 위험한 행위입니다. 가계가 대규모로 파산하면 가계대출을 해준 금융기관들도 부실해지고, 이들과 연결된 수많은 기업도 자금을 공급받지 못하게 됩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즉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이 금융권을 부실화시키면서 전 세계로 확산, 증폭된 것입니다.

빚 갚을 후손 늘어나면 빚 걱정 줄어

물론 대출받아 투자했다가 손실이 생길 때 새로 대출을 받아 돌려막기를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방식의 자금 조달을 폰지(Ponzi) 금융이라고 합니다. 1920년대에 미국에서 찰스 폰지라는 사람이 단기 고수익(45일에 50% 수익률)을 약속해서 사람들에게 돈을 끌어모았는데, 사실은 나중에 투자한 사람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1년 정도 이러한 투자가 진행되었는데, 결국 폰지가 고객 돈 2000만달러를 날리고 사기죄로 감옥에 들어감으로써 상황이 끝납니다.

폰지금융은 명백히 어리석어 보이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종류의 금융은 의외로 많습니다. 그리고 폰지금융이 가능한 상황도 실제로 존재합니다. 만약 돈을 맡기는 사람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지급해야 되는 수익보다 들어오는 돈이 더 많은 상황이 유지되면 이 방식을 무한히 지속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자본에 대한 실질 수익률보다 경제성장률이 더 높으면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과거 고도성장을 지속하면서 이러한 종류의 투자에 익숙했는지 모릅니다. 부동산 가격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면, 또 생산 인구가 계속 늘어나서 부채를 대신 갚아주거나 부동산을 사서 빚을 떠안아줄 후손이 점점 많아진다면 빚을 내서 미래의 부를 좀 가져다 쓴다고 해도 큰 무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산 연령 인구의 숫자가 줄어들고 부동산 가격이 언젠가 떨어진다면 미래의 부를 미리 가져다 쓰는 것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미래에 기대되는 자산 가치가 허상이라면 가계부채는 가계로 하여금 매월 피땀 흘려 번 돈을 내고 비싼 값에 거품을 소비하도록 조장하는 수단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 귀중한 돈은 결국 그 자산을 비싸게 판 사람이 가져가게 되므로 가계로서는 의도치 않은 부의 이전을 해준 셈이 됩니다.

인구 감소기엔 만기 일시 상환 대출부터 줄여야

경제학자 민스키는 현금 수입으로 원금과 이자를 낼 수 없다면 사실상 폰지금융과 같다고 했습니다. 원리금을 새로운 대출로 돌려 막다가 마지막에 이른바 '대박'을 노리는 모든 투자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가계부채도 가계소득으로 원리금을 갚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폰지금융에 가깝습니다. '나중에 집을 팔아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다가 집을 원하는 가격에 팔지 못하면 파산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최근 가계부채 대책에서는 원리금의 장기 분할 상환을 장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치식 대출, 즉 이자만 갚다가 원금을 나중에 일시 상환하는 방식은 주택 등 투자 대상의 가격이 대출 만기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데에 돈을 거는 도박과 같습니다. 생산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고 저성장이 고착화하고 있는 시점에는 그 위험성이 너무 큽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20~30년에 걸쳐 주택대출 원리금을 분할 상환하도록 해왔고, 또 애초에 자기 돈을 충분히 투입하도록 해서 주택의 미래 가격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되지 않게 유도하고 있습니다. 소득에 비해 가계부채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DTI(총부채상환비율:소득 중 원리금 상환 비중)를 규제하고, 주택 가격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대출받지 않도록 LTV(주택담보인정비율:집값 대비 대출금 비중)를 관리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가계대출, 은행권은 주춤하고 제2금융권 급증

은행권 가계 대출 증가 속도는 주춤하는 모습이지만, 저축은행 등 2금융권 가계 대출이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2금융권의 대출 금리는 은행권보다 높기 때문에 가계 부채의 질(質)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4월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현재 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상호금융, 새마을금고, 우체국예금 등 비은행 예금 취급기관의 가계 대출 잔액이 252조8561억원으로 전달보다 2조2925억원 늘었다. 한은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매년 2월 기준으로는 최대다.

반면 은행의 2월 말 가계 대출 잔액은 565조8246억원으로 전달보다 1조1809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은행의 가계 대출은 지난해의 경우 월평균 3조6740억원 늘었으나 올 들어서는 월평균 1조원 내외에 그쳤다./최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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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가계 부채 문제 해법

미국 등 선진국은 2007~2008년 '가계 부채 거품'이 터지면서 글로벌 금융 위기를 맞았습니다. 위기의 근원이었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빚 갚을 능력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해 '내 집 마련'에 나서게 했습니다. 그 결과 2002~2006년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생겼는데, 중앙은행이 이를 억제하려고 금리를 올리는 바람에 가계 부채 거품을 야기한 금융회사들이 부실해지면서 한순간에 '버블 붕괴'를 맞게 됩니다.

위기 이후 미국은 가계 부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고통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미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2007년 143%로 꼭지에 오른 후 최근 113%로 떨어졌습니다. 그동안 소득이 그다지 늘지 않았으니 소비를 줄여 빚을 갚아나간 셈이지요. 미국 외에도 영국, 스페인 등이 가계 부채 비율을 줄이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위기 직전 180%까지 가계 부채 비율이 치솟았던 영국은 최근 156%로 낮췄습니다. 스페인도 150%를 넘겼으나, 최근엔 128%로 떨어졌습니다.

반면 가계 부채 비율이 상당히 높은 상태를 유지한 나라들도 있습니다. 덴마크의 최근 가계 부채 비율은 315%에 달합니다. 위기 이후 25%포인트 가까이 가계 부채 비율을 줄였는데도 온 나라가 빚더미 속에 앉아 있는 셈입니다. 네덜란드(274%), 노르웨이(224%), 스웨덴(174%) 등도 상당히 높습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은 위기 이후 오히려 가계 부채 비율이 늘어났습니다.

이 북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들면서, 우리나라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가 이제 막 144%를 넘어선 정도이니 아직 위험하지 않다고 본다면 착각입니다.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