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문래동 바람에서는 쇳가루 냄새가 난다. 미국 어드메의 이름을 딴 타임스퀘어에 멋진 인파가 몰려들어도 공기에 물든 회색 향기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 회색의 근원은 1970년대 청계천에서 이사 온 1700여 개의 철공소들이다. 이면도로에는 철과 철이 맞닿아 만든 불꽃이 형형하며 그렇게 만든 철근을 구부리는 팔뚝은 경이롭다. 흔적만 간신히 남은 홍등가 불빛처럼 중국산 철강제품의 수입과 대규모 산업 단지 개발로 문래동 전성기는 지나간 지 오래다. 대신 무너질 듯한 철공소 사이사이에 벽화가 그려졌고 그 동네에는 '예술촌'이란 야심 없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 골목 틈, 슬래브 지붕을 한 단층 건물에 작은 식당 하나가 있다. 빨래가 걸린 식당 앞에 '소문난 식당'이라고 쓰인 간판이 보인다. 아마도 서울에서 제일 훌륭하다고 해야 할 묵은지 고등어조림이 기다리고 있다.
저녁 8시에 영업을 끝내는 이 집에 도착한 시각은 7시 30분이었다. 식당 구석에 자리를 잡았을 때 텔레비전 옆에 신문지를 깔고 도라지를 다듬던 여주인장이 "이 식당 한 지가 이제 24년째"라고 말했다. 돋보기안경에 파마머리를 하고 한쪽 엄지에는 골무, 한쪽 손에는 작은 칼을 든 폼은 나의 할머니와 비슷했다.
"고향이 어디신데요?"
"충북 영동이라."
나의 질문을 옆에 앉아 있던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 신사가 대신 받아 답을 했다. 이 집의 오랜 단골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가정집 같은 식당에는 작은 테이블 몇 개와 '안방'이라고 불러도 좋을 큰 방이 있었다. 잠시 후 계란 프라이가 먼저 나왔다. 그러나 계란 프라이는 조연일 뿐, 이 집 주연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오는 묵은지 고등어조림이다.
20대 초반 해군 근무할 때 보았던 서해 연평도의 타는 듯한 낙조(落照)가 이랬던가. 피카소의 '모자를 쓴 여인' 속 날카로운 붉은색에 더 가까울까. 한 번에 1500포기씩 담가 3개월을 익힌다는 묵은지가 야트막한 냄비 속, 고등어를 감싸듯 올라왔다. 그 묵은지의 색감은 '물 좀 주소' 하고 노래하던 한대수의 목소리처럼 절절했다. 그 이후 급박하게 벌어진 시퀀스는 다음과 같다. ①불가항력적인 탄성을 터뜨리고 침샘을 자극하는 묵은지를 세로로 찢는다. ②살이 오른 고등어 살점을 뜯는다. ③지은 지 얼마 안 된 흰 쌀밥 위에 그 둘을 올린다. ④바삭하게 구워 참기름 묻힌 김으로 그 모두를 싼다 ⑤입에 넣는다. 거기에 소주 한 병을 청해 곁들이니 굳이 문래동 뒷골목까지 온 수고가 아깝지 않다. 도라지를 비롯해 상 위에 오르는 나물은 충북 영동에 있는 밭에서 직접 따온다고 했다. 그 반찬들은 플라스틱이 아닌 하얀 자기 그릇에 담겨 있었다.
"직접 채소를 기르니까 10년째 같은 값을 받을 수가 있는겨. 맛도 달라. 일이 너무 힘들어서 내년쯤에는 그만두고 싶지. 그래도 계속 사람들이 찾아주니까 그만둘 수가 없네."
푸념인지 자랑인지 모를 주인 내외의 말을 들으며 남은 소주잔을 비웠을 때가 밤 9시였다. 서울에서 먹은 가장 맛있는 묵은지 고등어조림, 그 6000원짜리 집밥 같은 음식이 그다음 날에도 생각났다. 햇볕에 그을리고 주름살 가득한 주인 내외의 얼굴도 떠올랐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건네는 것을 잊고 식당을 나선 것도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