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꽁세르브리에서 판매하는 프랑스산 생선 통조림. 이 회사 통조림 수집가가 있을 만큼 포장 디자인이 아기자기하다.

"처음엔 호기심에 사봤는데, 끝맛이 가볍고 참치살이 입속에서 부서지는 질감이 국산 통조림과는 확실히 달라서 다시 사러 왔어요."

지난 3일 서울 압구정동 통조림 부티크 '라 꽁세르브리(La Conserverie)에서 만난 유경원(30)씨는 참치와 고등어 통조림 4개를 사갔다. 70~100g짜리 통조림 4개의 가격은 총 3만8500원이었다. 이 가게 이름은 프랑스어로 '저장식품 가게'로, 프랑스 참치 통조림 9가지, 고등어 통조림 6가지 등 생선 통조림 20가지만 판매한다.

이곳에서 파는 통조림은 모두 프랑스의 라 벨일루아즈(La belle-iloise)사 제품이다. 1932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국산 참치 통조림에 들어가는 가다랑어 대신 날개다랑어를 쓰고 부위별로 다른 통조림을 만든다. 가장 맛있는 부위로 치는 뱃살, 스테이크용으로 주로 쓰는 등살은 결이 살아있도록 통째로 담는다. 참치 고유의 맛과 식감을 느낄 수 있다는 평이다. 원양선에서 그물로 대량으로 잡은 참치가 아니라 프랑스 서부 어촌에서 어부들이 잡은 생선만 쓴다고 한다. 공정이 100%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해서 가격이 매우 비싸다. 가장 싼 제품은 고등어 통조림으로 80g에 6400원이고 가장 비싼 건 69g에 1만8500원인 참치 뱃살 통조림이다.

싼값에 오래 저장해두고 먹을 수 있는 통조림의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 고가의 제품이 속속 나와 제법 팔리고 있다. 명절용 알뜰 선물이던 참치와 햄 통조림, 손쉬운 식재료인 고등어, 꽁치, 골뱅이, 옥수수 등이 국산 통조림의 전부였다. 하지만 요즘은 세계 3대 식재료로 꼽히는 트러플(송로버섯), 캐비아, 푸아그라가 캔에 담겨 나오고 바닷가재, 연어알, 성게, 홍합 통조림도 생겼다. 백화점이나 수입 식료품점은 앞다투어 고가 통조림을 들여온다. 유통업계에선 통조림 시장이 '업 마켓(up-market·고급품 시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해설이 나온다.

서울 갤러리아 백화점에서는 2014년 12월부터 이탈리아 통조림 업체 '아즈도마' 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아즈도마'는 이탈리아에서 60년간 생선 통조림을 만들어온 업체로 100g짜리 참치 통조림이 7500원이다. 국산 참치 통조림이 100g에 1000~2000원인 것에 비하면 매우 비싼 가격이다. 아즈도마 통조림은 횟감으로 쓰는 황다랑어를 사용하고 카놀라유 대신 올리브유에 참치살을 담근다고 한다. 잡은 참치를 익히고 자르고 담는 것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진다는 통조림 제조 과정을 홈페이지에 공개해 놓았다. 동영상 속에서는 직원들이 컨베이어 벨트 앞에 일렬로 앉아 참치살을 깎고 캔에 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즈도마 수입업체는 "먹어보면 확실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에 광고나 할인을 하지 않는 대신 시식 행사를 주로 하고 있다"고 했다.

갤러리아 백화점은 이듬해 1월 같은 회사의 연어 통조림을 들여왔고 11월에는 이탈리아의 또 다른 통조림 업체 '리졸리'의 참치 통조림을 들여왔다. 지난 4월에는 고등어 통조림까지 수입하기 시작했다. 100g짜리 통조림의 개당 가격은 1만원이 훌쩍 넘는다.

생선 통조림뿐만 아니라 15g에 7만5000원인 캐비아와 145g에 6만8000원인 푸아그라도 지속적으로 팔리고 있다. 트러플의 경우 10만원대인 트러플 오일뿐만 아니라 이보다 몇 배 더 비싼 트러플이 통째로 든 통조림을 찾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원재료에서 나아가 유럽의 요리 자체를 통조림에 담은 제품도 인기다. 프랑스 통조림 업체 '보카주'에서는 20여종의 요리 통조림을 생산하는데 이 중 5가지가 우리나라에서 판매된다. 돼지고기, 아스파라거스, 감자 등이 들어간 프랑스 가정식 포크 샐러드, 토마토 소스와 함께 프랑스 툴루즈에서 만든 소시지가 통으로 들어있는 소시지 캐서롤 등이다. 가격은 300g에 6900원이다. 프랑스 군용 식품으로 개발된 이 제품은 국내에서 캠핑용으로 주로 판매된다. 보카주 통조림을 수입하는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8월 온라인 쇼핑몰 한 곳에서만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3일 만에 300개 이상 팔렸다"며 "수입 제품 종류를 더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