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선임기자

1981년 2월 1일, 전두환 대통령이 탄 전세기가 김포공항을 이륙했다. 기내 집무실에는 관계 부처에서 준비한 회담 관련 자료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는 잠깐 뒤적거리다가 자료들을 덮었다. "세세한 의제(議題)는 실무자들이 알아서 잘할 테고…."

정상회담 상대는 취임한 지 열흘도 안 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전두환은 초청받은 첫 외국 원수였다. 강대국들을 제치고 한국 대통령을 제일 먼저 만나는 것 자체가 빅뉴스였다.

전두환은 이번 회담 성사를 위해 비선(

線) 라인을 가동했다. 정통성 취약한 5공(共) 정권이 미국의 '승인'을 받기 위해 서둘렀고, 수감 중인 김대중씨의 형 집행 면제(免除)를 해주는 대가로 얻어냈다는 설이 돌았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실상은 좀 다르다. 회담의 핵심 의제는 안보(安保)였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의 조속한 해결과 흔들리는 한·미 관계 복원에 있었다.

전임자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77년 취임하자마자 "향후 4~5년 내 주한미군 단계적 철수"를 통보해왔다. 요즘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등장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부동산 재벌 트럼프가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지 않으면"이라고 조건을 달았다면, 땅콩농장 주인 카터는 한국의 인권 상황을 거론했다. 카터의 입장은 확고했다. 이에 반기를 든 존 싱글러브 당시 주한미군 참모장은 즉각 해임됐고, 박정희 대통령은 "철군할 테면 해보라"며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최악의 한·미 관계였다. 카터와 박정희 간에는 인간적 반감도 깊었다. 청와대에서 박정희와 만나던 카터는 '이 자가 2분 안에 입을 안 닥치면 방을 나가겠다'는 쪽지를 건넸을 정도였다.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법안은 의회의 승인을 얻는 데 실패했다. 철군은 일단 보류 상태가 됐다. 몇 달 뒤 박정희는 시해됐고, 1980년 미 대통령 선거에서 카터는 낙선했고 레이건이 당선됐다. 전두환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행(行) 비행기에 올라타면서 그는 이렇게 마음먹었다.

'꿀릴 게 없다. 레이건은 백악관 주인이 된 지 열흘도 안 됐다. 내가 회담을 이끌어갈 거다. 미국이 우리의 안보와 경제에서 결정적인 버팀목인 것은 분명하나 미국도 세계 전략상 우리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비행기가 일본 상공을 지날 때 군(軍) 출신답게 그의 머리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세계 2차대전 패전국인 일본이 어떻게 이런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됐나. 국제 공산 세력의 팽창 전략으로부터 한반도가 저지선이 돼준 덕분이 아닌가. 6·25의 특수(特需)까지 톡톡히 누리지 않았나. 따져 보면 일본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비용을 우리가 대신 지불해온 것 아닌가.

그의 상념은 현실적인 계산으로 이어졌다. '안보 무임승차를 해온 일본은 최소한 주한미군 2개 사단의 5년치 주둔 경비는 내야 맞다. 1개 사단 1년 유지 비용이 약 10억달러니, 모두 100억달러를 받아내자. 이걸 정상회담 의제에 포함하자.'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그때까지 15년간 일본이 한국에 제공한 경협 차관(借款) 총액이 13억달러였다. 그런 마당에 그는 배짱 좋게 '100억달러 안보 협력 차관'을 구상한 것이다. 관료나 직업 외교관 출신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발상이었다.

백악관 회담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한국의 안보는 동북아 안정에 기여하고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소련은 극동 지역에 주둔시키고 있는 군대를 유럽으로 이동시킬 것이다. 그러면 미국의 세계 전략도 수정될 수밖에 없다"라는 그의 설명에 레이건도 동의했다. 주한미군 철수 계획은 백지화됐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재확인됐다.

회담이 끝날 무렵 전두환은 "사실 이번 방문 목적은 갓 취임한 레이건 대통령을 좀 도와드리기 위한 것"이라며 운을 뗐다. 미국 측이 관심을 보였다.

"한국은 GNP 600억달러의 6%를, 일본은 1조1600억달러의 0.09%만 국방비로 부담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은 동북아의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 이 덕분에 일본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 일본이 한반도 방위비의 일부를 부담하는 게 도리다. 일본을 설득해서 안보 차관을 받게 해주면 그걸로 국방력 강화를 위해 미국 비행기와 탱크를 사겠다.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레이건은 "이견이 없다(No disagreement)"며 큰 몸짓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2년 뒤 한국은 협상 끝에 일본으로부터 40억달러의 안보 차관을 받아냈다.

세간에는 부정적 이미지로만 먹칠 돼 있지만, 이런 전두환 케이스는 장차 트럼프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지도자는 어떻게 마음먹고 돌파해야 하는지, 어떻게 국면을 우리 국익에 유리하게 끌고 올 수 있는지에 대한 의미 있는 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