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탈락 시련 보듬어준 제춘모 코치
문승원은 호투로 보답, 눈물로 통한 마음

[OSEN=김태우 기자] 경기 후 팬들을 향한 단상 앞에 두 남자가 섰다. 예상치 못한 조우에 서로를 보며 멋쩍은 미소가 흘렀다. 그러나 서로의 눈을 촉촉하게 적시는 눈물 앞에,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4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와 한화와의 경기가 끝난 뒤 문승원(27, SK)과 제춘모 SK 투수코치는 진짜 '울고' 있었다.

문승원은 4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경기에서 2012년 프로 데뷔 후 첫 승리를 따내는 감격을 안았다. 올 시즌 세 번째 선발 등판한 문승원은 몇 차례 위기에도 불구하고 5이닝을 1실점으로 막으며 기어이 승리투수 요건을 갖췄다. 그리고 팀이 5-1로 이겨 문승원의 프로 첫 승이 완성됐다. 결승 만루포를 터뜨린 정의윤과 더불어 팀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다.

경기 후 구단 수훈선수로 1루측 팬 응원석에 선 선수 중 하나가 문승원인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이때 깜짝(?) 손님이 등장했다. 강화에서 2군 선수들을 지도해야 할 제춘모 코치가 문승원이 서 있는 단상에 등장했다. 문승원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 코치도 부끄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두 남자의 눈가가 팬들이 알아챌 정도로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간의 고생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사연이 있었다.

선수와 코치로서 양자는 지난해 문승원의 제대 이후 연을 맺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긴 인연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가장 힘들 때 함께 했던 기억이 있다. 문승원은 오키나와 전지훈련 당시 “적극적인 승부가 부족하다”라는 이유로 캠프서 중도 탈락했다. 1군 코칭스태프는 문승원을 조영우와 함께 대만 타이중에서 열리고 있던 퓨처스팀(2군) 전지훈련에 보냈다.

그때 오키나와에서 대만까지 같이 날아간 인솔자가 다름 아닌 제 코치였다. 선수들과 같이 짐을 옮겼고, 점심이 지나 타이중 숙소에 도착한 선수들을 따로 불러 밥을 먹인 이도 제 코치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누구보다도 엄하게 이 선수들을 다그친 이 또한 제 코치였다. 탈락 후 어수선한 마음이 딴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다잡았다. 문승원은 그런 제 코치의 관리 속에 점차 안정을 찾아갈 수 있었다.

대만 캠프에서 구위를 회복한 문승원은 시즌 초반 2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결국 윤희상의 부진으로 빈 팀의 5선발 자리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3경기에서 모두 5이닝 이상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2.35의 호투를 선보였다. NC, 두산, 한화와 같이 타선이 만만치 않은 팀들을 상대로 한 성과라 더 값졌다. 첫 승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도 마련했다.

장난도 치고, 혼도 내고 했지만 그런 문승원을 가장 조마조마하게 지켜본 이도 역시 제 코치였다. 지난 4월 22일 인천 NC전에서 문승원이 첫 1군 선발 등판을 할 당시 예고 없이 인천을 찾아 경기를 지켜봤다. 호투에도 승리를 하지 못하자 아쉬움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제 코치는 4일 인천 경기에서 문승원이 등판하자 퓨처스팀 일정을 마치고 경기장에 왔다. 그리고 문승원의 성장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며 박수를 쳤다.

제 코치는 첫 날 조용히 다녀갔다고 생각했지만 구단이 안절부절 못하는 제 코치를 놓칠 리 없었다. 한 관계자는 “문승원이 첫 승을 하면 그 자리에 제 코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전에 준비를 하고 경기 후 설득해 단상에 올렸다”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잊지 못할 두 남자의 첫 승 행사가 많은 팬들의 박수와 격려 속에 완성됐다. 행사가 끝난 뒤 한목소리로 “부끄럽고 창피했다”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런 눈물은 좀 더 흘려도 괜찮을 것 같다. /skullboy@osen.co.kr

[사진] SK 와이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