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 이은결(35)은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중학교 3학년이던 1996년 마술학원이 첫 무대였다. 4일부터 20주년 기념 공연 '비욘드 더 트랙(Beyond The Track)'을 국립극장에서 올린다. 격(格)을 따지는 국립극장에 마술사가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은결은 한 달 전부터 경기도 이천 연습실에서 밤을 새운다. 지난 3월 결혼했지만 서울 삼성동 신혼집에는 거의 들어가지 못한다. 지난 23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은결은 "(아내에게) 잘살고 있느냐고 전화로 물어봤다"고 했다.

지난 23일 저녁 서울 여의도에서 이은결의 어깨 위로 가로등이 빛나고 있다. 그가 손을 올리자 마술로 빛을 만들어낸 듯한 장면이 빚어졌다.

이은결은 야바위꾼의 눈속임으로 치부되던 마술을 종합공연예술로 끌어올린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는다. 그 평가를 받기까지 숱하게 넘어졌다. 가장 큰 고비는 10주년을 앞두고 닥쳤다. "그때만 해도 제가 할 줄 아는 걸 최대한 뽐내는 데에 치중했어요. 공중부양도 하고, 사람을 자를 때는 최소한 아홉 등분은 하고…. 그런 식의 눈요기를 극대화하려 했죠. 라스베이거스 공연에 맞먹는 스케일을 보여주겠다고 도전한 게 헬리콥터 등장이었어요." 2005년 이은결은 서울 강남의 한 대형 공연장에서 '국내 최초 헬기 등장'을 내세우며 야심 차게 공연을 올렸다. 그리고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첫날 완전히 박살 났다". 초반부터 크고 작은 실수가 이어지더니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인 헬기마저 나타나지 않았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허리 굽혀 사과하고 무대를 내려오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이은결은 "살면서 그때만큼 운 적이 없었다"고 했다.

첫 시도 때 실패했던 헬리콥터 등장 장면.

[일루셔니스트 이은결 프로필]

1년간 슬럼프가 이어졌다. '죽고만 싶었던' 그 1년은 그러나 헛되지 않았다. 헬리콥터 쇼에 연연하던 자신과 이별했다. "마술은 현실에서 맞닿을 수 있는 환상을 보여주는 유일한 공연 장르지 쇼가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쇼에 집착했던 거예요. 마술이 보여주는 눈속임도 이미 영화가 더 크게, 잘 보여주고 있어요." 그는 "마술이라는 언어를 가지고 관객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건가를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2006년 다시 일어선 이은결은 국제마술연맹(FISM) 세계챔피언십대회 제너럴 부문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했다. 보여주기를 버린 첫 10년이었다면, 이후 10년은 신비주의 털어내기였다. 그는 최근 방송에 나와 개그맨 같은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간 마술은 신비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지 못해 아등바등했어요. 이제 저 자신을 열어 보이고, 신비해서가 아니라 이은결이라서 보여줄 수 있는 마술을 하고 싶어요. 요즘은 자유를 느껴요."

그래서 이번 공연의 주제도 '자유'다. 하고 싶은 걸 하는 자유, 그 자유를 계속 누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이은결의 과거, 현재, 미래에 엮었다.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차이는 당장 시작하느냐에 달려있어요. 저처럼 평범한 아이가 마술사라는 꿈 꾸지 못해봤던 삶으로 들어설수 있었던 것은 일단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조금이라도 어설프게라도 할 수 있으면 그 일을 꿈이라고 부르고만 있지 말고, 지금 당장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