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에 5시간 갇혀 있었다. 교황이 와서 막힌다더군. 한마디 전하고 싶다. '개XX, 집으로 돌아가라'고."

필리핀 야당 대선 후보 로드리고 두테르테(71·민주필리핀당) 다바오시(市) 시장은 지난해 교황이 필리핀을 방문했을 당시 이렇게 말했다. 필리핀은 인구 83%가 가톨릭 신자인 나라이다. 이런 막말에도 두테르테 시장은 오는 9일로 예정된 필리핀 대선에서 지지율 선두(33%)를 달리고 있다. 국민 배우인 고(故) 페르난도 포의 수양딸로 무소속 후보로 나선 그레이스 포(24%) 상원의원, 집권 여당인 자유당 후보 마누엘 로하스(19%) 전 내무장관 등을 앞서고 있다.

◇막말로 인지도 높인 '필리핀 트럼프'

두테르테 시장은 '6개월 이내 범죄 근절(根絶)'을 공약으로 내걸고 출마했다. 지방검사 출신인 그는 1988년부터 28년 동안 필리핀 남부 다바오시 시장으로 재직 중이다. 범죄가 만연한 이 도시에서 자경단(自警團)을 조직해 재판 절차도 없이 1000명이 넘는 범죄자를 처형한 이력이 있다.

그는 올 초만 해도 군소(群小) 후보 취급을 받았지만 지난달부터 1위 후보로 급부상했다. 대선을 앞두고 강력 범죄가 잇따라 터지면서 치안 문제가 이슈가 되자 강점이 부각된 것이다. 계속되는 '막말'로 신문지 상에 오르내리며 인지도를 높인 측면도 있다.

두테르테 시장은 지난달 공개된 유세 영상에서 1989년 다바오시 교도소 폭동 당시 폭도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호주 여성 선교사를 두고 "시장인 내가 먼저 (성폭행)해야 했는데"라고 말해 국제적인 비난을 샀다. 필리핀 주재 미국·호주 대사는 "성폭행과 살인은 농담거리가 되어선 안 된다"고 비판했지만 그는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 닥쳐라. 내가 대통령이 되면 (외교) 관계를 끊자"고 맞받아쳤다. 모닝뉴스USA는 "정신 상태가 의심된다. 막말로는 거의 도널드 트럼프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지지자들, '더티 해리'로 부르며 열광

[필리핀은 어떤 나라?]

전문가들은 그가 인기를 끄는 이유로 엉망인 필리핀 치안을 들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35만여 건의 강력 범죄가 발생했다. 하지만 체포영장 발급에만 보통 3~6개월이 걸리고, 사건이 벌어진 지 2년 뒤에야 1심 재판이 시작될 정도로 사법 시스템이 낙후돼 있다.

지지자들은 두테르테 시장을 '더티 해리(상관의 방해에도 범인을 끝까지 추적해 사살하는 형사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라 부르며 범죄 소탕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유세장에서 "범죄자의 시체를 빨랫줄에 널어버리겠다" "마닐라만(灣)을 범죄자의 피로 물들이겠다"는 등의 발언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필리핀대 정치학 교수인 클라리타 카를로스는 AFP통신에 "유권자들은 그의 지각 없는 행동은 개의치 않는다"며 "범죄가 만연했던 다바오를 필리핀에서 가장 평화로운 곳으로 변모시킨 행적만 주목한다"고 말했다.

필리핀 대통령은 6년 단임(單任)으로, 임기 동안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그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자 필리핀 금융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지난달 필리핀 화폐 가치는 1.6% 하락했고, 외국인 투자자들도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