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전국 명창 대회'에 한 청년이 등장했다. 땅딸막한 키에 무릎 위로 껑충 올라간 검정 두루마기, 딱히 잘생기지는 않은 얼굴. 행색마저 군색했던 이 스물다섯 사내는 구름같이 몰려든 관객을 이내 사로잡아 버렸다. "쑥대머리 귀신형용(鬼神形容) 적막옥방(寂寞獄房) 찬 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배 속에서 바로 소리를 뽑아서 내뿜는 통성에 쉰 목소리처럼 껄껄하게 우러나오는 그의 소리가 울려 퍼지자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쑥대머리'는 '춘향가' 중에서도 옥에 갇힌 춘향의 처연한 심사를 그린 '옥중가(獄中歌)'의 한 대목. 절망적 시대 분위기와 포개지면서 청중을 휘감는 정서도 예사롭지 않았다. 국창 임방울(林芳蔚·1904~1961)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26일 광주광역시 빛고을아트스페이스 대강당에서 열린 '국창 임방울 예술의 발전 방향'은 일제강점기 민족의 한(恨)을 판소리로 풀어냈던 임방울 선생의 예술혼을 계승하기 위해 광주광역시와 조선일보사가 마련한 학술 포럼이었다. 주제 발표를 맡은 소설가 한승원(77)은 이 자리에서 선생의 소리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우초(愚礎) 방일영(方一榮) 전 조선일보 고문과 선생의 남다른 인연을 소개했다. 한씨는 2년 전 선생의 삶과 예술을 그린 장편소설 '사랑아, 피를 토하라'를 펴냈다.
임방울 선생이 조선일보 사장을 지낸 계초(啓礎) 방응모(方應謨)를 만난 것은 연주회에서 장원을 한 다음 한 고급 요릿집으로 초청을 받아 가서였다. 선생을 눈여겨본 계초는 물론이고 그의 손자인 우초 또한 그 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우초는 사원이나 독자들의 위안 잔치에 임 선생을 초대해 공연케 했고, 지방 지사를 순회할 때에는 임 선생과 동행하기도 했다. 경남 통도사에 함께 가면서는 선생의 구슬프면서도 장쾌한 소리를 즐겼다. 1961년 3월 임방울 선생의 장례를 치르던 날 상여가 망우리 공동묘지로 이동할 적에 광화문 조선일보사 앞에서 거리제를 지냈다. 사단법인 임방울국악진흥회가 만들어지고 조선일보사가 아낌없는 후원을 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임방울의 소리엔 촉기(觸氣)가 들어 있다"고 한승원은 말한다. 그가 말한 임방울 소리의 '촉기'는 '가슴을 건드리는 기운'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