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위안소가 설치되고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음을 인정한다. 위안소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 아래 참혹한 것이었다. 위안부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입은 모든 분께 진심으로 사과와 반성의 말씀을 드린다.”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일본 관방장관이 긴장된 얼굴로 ‘고노 담화’를 읽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터진 뒤 줄곧 책임을 부인하던 일본 정부가 20개월에 걸친 자체 조사 끝에 ‘위안소를 세우고 운영하는 과정, 위안부를 모집하는 과정에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고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현대사의 현장에서 한·일 관계의 격랑을 지켜본 고노 전 장관은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의 양국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다음 달 17일 조선일보 주최로 열리는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참석에 앞서 “새로운 시대에 맞춰서 긍정적인 한·일 관계가 될 수 있도록 양국 정부와 국민이 인내심과 신뢰를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노 요헤이 전 일본 관방장관은 작년 12월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를 “양국 관계에 박힌 가시를 뽑아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큰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본지에 한·일 관계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으나 사진 촬영에 응하지 않는 등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고노 담화 후에도 한·일은 오랫동안 날카롭게 대립했다. 일본 우익은 툭하면 "고노 담화는 잘못됐다.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였다"며 한국을 자극했다. 양국 관계가 아물지 못하게 계속 새로 덧나는 상처가 위안부 문제였다. 고노 전 장관은 작년 12월 양국 정부 사이에 이뤄진 위안부 합의에 대해 "한·일 관계에 박힌 가시를 뽑아 긍정적인 한·일 관계를 만들어 가는 큰 결단"이었다고 평가했다. 한·일은 현재 "대국적으로 보면, (이 큰 결단을) 지지(支持)하느냐, 지지하지 않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인 올해 1월, 자민당 6선 의원이 "위안부는 직업적 창부였다"고 말하자, 고노 전 장관이 TV에 나가 "해당 의원이 이 문제에 대해 전혀 공부를 안 했다. 정치가로서 실격"이라고 나무라기도 했다. 그에 앞서 작년 6월엔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와 나란히 기자회견을 열고 아베 정부를 향해 "위안부 문제를 인정한 고노 담화와 식민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1994년 7월 이탈리아 나폴리 G7 정상회담 참석차 정부 전용기에 함께 탑승한 고노 요헤이(왼쪽) 당시 외무장관과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의 주인공이다.

[위안부란 어떤 의미인가?]

[[키워드 정보] 고노 담화란 무엇인가?]

그는 ALC 참석을 앞두고 "아베 총리가 결단한 이상, 일본 측은 앞으로 규칙을 어기는 발언 등을 엄격히 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일본 우익들이 위안부를 모욕하는 발언으로 간신히 위기를 넘긴 양국 관계를 또다시 흔들어선 안 된다는 고언으로 풀이된다. 고노 전 장관은 "한국 정부도 이번 합의를 지킬 수 있도록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을 꼭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고노 담화가 나온 1993년은 냉전이 끝나고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 지위를 누리던 시기였다. '북핵'이라는 변수도 아직 없었다. 23년이 흐른 지금, 동북아 정세는 완전히 달라졌다. 강성해진 중국이 미국과 삐걱거리고 있다. 북한은 올해 1월 4차 핵실험을 단행한 데 이어, 9일 사정거리가 미국 본토에 닿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엔진 연소 실험을 했다. 달라진 환경에 맞춰, 새로운 한·일 관계를 짜는 것이 숙제로 남아 있다. 고노 전 장관은 "현재 동북아에는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매우 어려운 과제도 있다"면서 "이 기회에 양국이 본질적인 신뢰 관계를 쌓길 바란다"고 했다. 고노 전 장관이 바라보는 한·일 관계의 바람직한 미래가 어떤 것인지 ALC에서 들을 수 있다.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前 일본 관방장관은]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자민당 중도 세력을 대표하는 올해 79세의 원로 정치인이다. 1993년 8월 미야자와 내각 때 일본 정부 대변인 신분으로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고노 담화’를 냈다. 이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92) 당시 일본사회당 총리 등과 손잡고 연립정권을 세웠다. 1995년 무라야마 총리가 식민 지배를 사죄하는 ‘무라야마 담화’를 낼 때 외무대신 겸 연정 파트너로서 무라야마 총리를 도왔다. 작년 6월, 무라야마 전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라”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압박했다. 2003년 11월~2009년 7월까지 역대 최장 기간 중의원 의장을 지냈다. 와세다대학 시절엔 야구선수였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교섭 때 막후에서 뛴 고노 이치로(河野一郞) 전 부총리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