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곰의 얼굴을 한 대호, '태양인' 김우택"
"첫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엔터테인먼트 태양계에 빅뱅 일으켜"
"넥스트 플랜은 생각해본 적 없어, 준비 체력을 키울 뿐"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MBA 학위를 받은 전형적인 인수합병(M&A) 전문가가 어느새 꿈을 짓고 꿈을 공유하는 드림팀의 리더가 되었다.

영화투자배급사로 시작해서 뮤지컬, 음반, 극장, 드라마 사업까지 진출한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이하 NEW)는 논현동 두산빌딩 8층에 세 들어 산다. 직원은 80명 정도다. ‘태양의 후예'를 사전 제작해서 한국과 중국의 드라마 시장을 넘어서 유럽에까지 핵폭탄급 신드롬을 일으킨 김우택 대표(52세)가 NEW의 수장이다.

NEW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김우택의 실제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60~70년대 영화계를 풍미한 올드 스타 ‘신성일'과 ‘남궁원'을 닮았다. 익숙한 듯 호방하며 친근하다. 어느 자리에서나 말보다 너털웃음을 먼저 터뜨려 주위를 편안하게 만드는 그다.

그러나 사업가의 면모로 차갑게 바라보자면 김우택은 부드러운 곰의 얼굴을 한 대호(大虎)다. 그가 ‘태양의 후예'를 만들었다. 글은 작가가 쓰고 연기는 배우가 하고 연출은 PD가 하지만, 그것이 실행 가능하도록 태초에 모든 구조를 설계한 사람이 바로 김우택이다.

그는 ‘태양의 후예'의 중국 사전 판매, 동영상 플랫폼 ‘아이치이'에 회당 3억 원 선판매, PPL 35억 원 판매로 첫 방송 전에 이미 제작비 130억 원을 뽑아 ‘사전 제작'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32개국 판매와 드라마 OST 제작 유통 등 그 콘텐츠 부가가치의 확장은 설명이 필요 없다.

물어보지 않았지만, ‘태양의 후예'를 만든 사람답게 김우택은 체질적으로 ‘태양인'임에 분명하다. 건강백과에 따르면 태양인은 체격이 크고 얼굴은 둥글고 잘 생겼으며, 눈은 정기가 있고, 목덜미가 충실하다. 성격은 활달한 편이라 사귐을 잘하며, 명석하고 진취적이다. 결정적으로 남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 낸다. 딱 김우택이다.

그가 ‘태양인'임을 추측할 수 있는 창업 초기의 물리적인 일화가 있다. 그는 2008년 쇼박스 미디어플렉스 대표라는 안정된 대기업 임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삼성동 건물 한 켠에 NEW라는 간판을 단 작은 회사를 차렸다.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 등을 배급하며 이름을 날리던 영화계 거물은 단출하게 직원 4명과 함께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건물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모든 게 불에 타버렸다.
"홀랑 다 타버렸죠. 그 일이 트라우마가 되긴 했지만 모든 건 해석에 달려있어요. 다 잘 되려고 그랬던 거 아닌가 싶어요." 엔터테인먼트 신대륙을 찾아 나선 그는, 뜨거운 화마(火魔)를 이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김우택이 본격적으로 영화배급 사업에 대한 경험을 쌓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오리온그룹 계열의 배급사인 쇼박스 미디어플렉스의 대표로 취임한 이후부터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괴물'을 배급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태양인' 김우택이 이번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내뱉은 단어는 꿈, 체력, 상식이었다.

꿈과 상식이 잘 붙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신적 육체적 조직적 체력이라는 것. 지극히 현실적인 꿈의 공장장다웠다.

“사업 계획은 창사 이래 세워본 적이 없고, 똑똑한 사람 대신 꿈이 맞는 사람과 일한다"는 NEW의 김우택 대표를 만났다. 한 달 사이에 70% 이상 뛰는 NEW의 주가 앞에서 들뜰 법도 한데, 맑은 얼굴엔 이상하리 만치 돈 냄새가 나지 않았다. 매일 아침 7시에 나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직원들 표정이 무척 밝습니다. ‘태양의 후예'가 크게 성공해서겠지만, 예전부터 영화나 뮤지컬 현장에서 NEW의 직원들은 특별히 에너지가 넘치고 자신감이 있어 보이더군요.

“2008년에 4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 80명 정도로 늘었어요. 제가 “왜 안 나가냐”, 물어보면 “여기보다 좋은 직장을 못 찾아서” 그렇대요(웃음).”

-리더로서 김우택 대표의 매력은 무엇이죠?

“꿈이 있다는 거죠. NEW 직원들도 마찬가지예요. 자기 꿈과 오너의 꿈이 맞는 사람들이 오래 있어요. 꿈이 맞는 사람들끼리 있으면 힘들어도 행복해요. 꿈이 안 맞으면 다른 직장을 구하든지, 자기 비즈니스를 해야죠.”

김우택은 금융전문가답게 리스크 관리도 치밀했다. 창립 이후 NEW는 회사 고유계정의 투자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추가 투입비용은 외부에서 결성한 투자조합을 이용해 재무 리스크를 줄이는 전략을 폈다.

-NEW의 꿈이 궁금하군요.

“멋진 미디어 회사가 되는 거예요. 사랑과 정의 같은 상식적인 가치를 대중과 나누고 사회에 널리 소통시키면서 좋은 에너지를 주는 거죠. 미디어 회사다운 자유와 창의성을 근간으로 해서요. 구글 회사에서 일해본 적은 없지만, 구글의 이미지를 좋아해요. 대기업 시스템에서 나온 공장 같은 미디어 경영은 피하고 싶어요.”

-1998년부터 10년 동안 메가박스, 쇼박스 등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젊은 나이에 대표까지 올랐습니다. 대기업에서 순항하던 분이 직원 4명 데리고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메가박스 총괄대표를 맡았을 때가 36살이었어요. 제가 일한 회사에 감사한 건 ‘정말 내 것처럼 일하게 해줬다'는 거예요. 권한도 강했고, 눈치도 안 봤어요. 그러면서 회사가 성장하는 걸 보는 기쁨이 컸어요. 돈도 영향력도 날이 갈수록 커졌지요. 2008년 즈음엔 이 일을 좀더 소명을 갖고 하고 싶어졌습니다.”

2008년부터 NEW는 작지만 강한 회사로 영화계에서 차근차근 이름을 얻어갔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투자 방식, 저예산의 작은 영화를 여러 편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결정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2013년이었다. 2012년 ‘내 아내의 모든 것’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피에타’ 등 화제작들을 내놓으며 시동을 건 NEW는 이듬해 2013년 ‘7번 방의 선물’과 ‘변호인’, ‘신세계’ 등으로 잇따라 대박을 터뜨리며, CJ와 쇼박스, 롯데를 이기고 그해 관객 동원 1위를 기록했다. 다들 기적이라고 했다.

내리막길도 있었다. 2014년과 2015년 ‘허삼관'과 ‘대호' 등 크게 실패를 맛보았다. 주가는 급락하고 재무 환경을 염려하는 시선도 많았지만, 잘 나갈 때나 못 나갈 때나 김우택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2년간 우직하게 뮤지컬과 스포츠, 음악 사업부를 론칭하며 저변을 확대했고, 중국의 금융 자본과 엔터테인먼트를 연결해 갔다.

2014년엔 중국의 드라마제작·유통업체인 화처미디어로부터 540억 원의 투자유치 계약, 이어 2015년, 10월, 부산영화제 기간에 모두가 파티의 여흥에 취해 있을 때, 중국에 합자법인 화책 미디어를 설립했다. 그 모든 게 ‘태양의 후예'라는 작품을 중심으로, 엔터테인먼트 태양계에 빅뱅을 일으켰다.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원칙이 있나요?

“결정적인 결정이든, 사소한 결정이든 인생은 결정의 연속이에요. 좋게든 나쁘게든 계속 쌓여서 지금에 이른 거겠죠. 가령 쇼박스에서 ‘태극기 휘날리며' 배급을 결정한 것, 당시에 그게 쇼박스가 한 단계 도약한 계기가 됐다고 뿌듯해하지만, 그동안 제 손으로 ‘망한’ 결정도 많이 내렸죠(웃음).

중요한 건 과정이에요. 성공이든 실패든, 이 결정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이 자산으로 남겠다 싶으면 결정해요. 조직구성원에게 지적 재산으로 쌓인다면, 다소 위험한 결정이라도 내려요. 반면 그냥 돈 넣고 돈 먹는 그런 식의 투자 결정은 안 해요.”

-‘태양의 후예'의 제작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걸 통해서 직원들이 많이 배울 수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우리 회사는 드라마 제작은 처음이라 드라마 팀도 없어서 각 팀에서 차출해서 7~8명이 이 일을 해냈어요. 실수도 많았지만 확실히 노하우가 쌓였다는 게 느껴져요.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다음에 하면 진짜 잘할 수 있다"예요. 남이 하는 데 돈만 넣었다면, 크게 터져 돈은 벌었겠지만 ‘넥스트'를 기대할 수는 없었겠죠. 뮤지컬 ‘디셈버'를 처음 시작할 때도 그랬어요. 그 분야에 아무것도 몰랐지만, 일단 김광석 음원으로 판을 크게 벌였죠.”

김우택의 사무실. 가족 사진과 십자가, 그리고 장인인 한완상 전 통일부 장관이 준 서적과 영화인으로서 받은 영광스러운 트로피가 자리하고 있다. NEW는 곧 사옥 이전을 앞두고 있다.

-대개 처음 하는 결정은 보수적이기 마련인데, 대단히 공격적이군요.

“리스크를 책임지는 건 리더가 할 일이죠. 첫 시작은 적어도 배울 수 있는 프로젝트여야 해요. 그리고 시장의 기존 틀을 바꿀 수 있을 만큼 도전적이어야 하죠. 남이 하는 걸 따라 하거나, 안전하게 지분만 태우고 옆에서 배우자, 이런 말은 다 ‘뻥'이예요. 그런 정도로 주저할 거면 하지 말아야죠.”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고자 하는 개척자 기질이 강합니다. 엔터테인먼트 출신도 아니고, 경영학도에 M&A 전문가였던 걸로 알고 있어요.

“젊을 때는 회사를 크게 하고 싶은 욕심이 정말 강했어요. 미디어라는 업을 즐긴 건 아니었지요. 40대가 돼서야 회사 크기나 시장점유율보다 더 중요한, 대중과 소통하는 기쁨을 알게 됐죠. 내가 가진 철학을 나누고 싶다는 소명이 생긴 거죠.”

-철학이 생겼다…

“대단한 건 아니에요. 가족에 대해, 사랑에 대해, 정의에 대해, 통일에 대해 건강한 상식을 나누고 싶다는 거죠. ‘변호인'이나 ‘그대를 사랑합니다' 같은 영화를 한 이유도 그런 거죠. 쇼박스 시절에 배급했던 ‘웰컴 투 동막골'같은 영화가 제 취향의 절정이었어요. ‘태양의 후예'를 결정한 것도 그 이야기가 대단히 보편적인 상식을 담고 있어서예요.

애국주의를 조장한다는 둥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분들도 많지만, 군인이 나라에 충성하고 의사가 사람을 살리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에요. 대사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은데, 시청자들은 송중기의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를 좋아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유시진 대위가 국가에 관해 얘기할 때, 강모연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할 때, “아! 이 드라마 잘했다 느껴요(웃음).”

-비즈니스 스타일은 공격적인데, 작품은 보편타당한 것을 추구하는군요.

“지극히 상식적인 가치를 추구해요. 새로운 걸 요구하지 않아요(웃음).”

-박찬욱 감독 작품 같은 상식을 뒤엎는 센세이셔널은 맞지 않겠군요(웃음). 한때 한국에서 제작을 거부했던 김기덕 감독의 손발이 되어 걸작으로 남을 영화 ‘피에타'를 제작하기도 했지요?

“김기덕 감독 작업에 참여하고 그 일원이 된 건 좋은 경험이었어요. ‘풍산개'로 인연이 됐지요. ‘피에타'는 세계 3대 영화제 중의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는 데, 말할 수 없이 뿌듯했어요. 한국 문화가 영화 예술계에서 제대로 인정을 받았으니까요.”

영화인으로 받은 영광의 트로피.

-하나의 프로젝트를 할 때 어느 정도 관여합니까?

“저는 구조를 짜주는 일까지만 해요. 아이템을 가져와서 자본을 만들어주는 일까지. 콘텐츠에는 특별히 관여하지 않습니다.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요.”

-2013년엔 CJ, 쇼박스, 롯데 대기업 3강 체제를 깨고, 중소기업인 NEW가 영화 투자 배급 분야에서 1위를 해서 영화계에 파란을 일으켰어요. ‘변호인' ‘7번 방의 선물' 등 천만 영화가 두 편이나 나왔지만, 이후 2년 동안은 ‘대호' 등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영화들로 위기 상황을 겪었던 거로 압니다.

“2년간 타격이 있었지요. 하지만 필요한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그 동안 새로운 시도를 준비할 수 있었어요. 업계에서는 제가 새로운 걸 한다고 하면 많이들 말립니다. 영화만 해라, 하던 것만 하기도 버겁다. 그런데 제가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건 생존의 문제예요.

미디어 사업은 개인이 하기가 쉽지 않아요. 비용이 들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해나가야 하죠. 새로운 확장이 생존과 직결돼 있어요. 힘든 2년 동안 언젠가는 뮤지컬을 해야지, 언젠가는 드라마를 해야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체력을 만들어 가요. 체력은 곧 사람과 자원을 확보하는 일이고요. 그렇게 준비하다 보면 기회가 왔을 때 주저 없이 스타트 할 수가 있어요.”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아침 7시 정도에 출근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요. 가장 중요한 시간이에요(웃음). 간단히 기도하고 차 마시고 생각을 정리하고, 아침 9시 반부터 본격적인 일과를 시작해요. 그 뒤부터는 계속 결정하는 일이에요.”

-조직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는데, 내부 소통은 잘 되는 편인가요?

“외부적으로 돈을 많이 벌고 조직이 주목받고 그런 건 덜 중요해요. 진짜 중요한 건 회사 내부의 분위기예요.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 ‘태양의 후예'가 하나의 샘플로 확신을 줬다고 봐요. 조직이 잘 가고 있다는 자신감 같은 건 돈으로 살 수가 없거든요. 한편으로는 드라마가 잘 되니까 영화팀이 주눅이 들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자극을 받아서 좋다고 하더라고요.”

직원들에게 보고서 만드는 것도 못하게 한다는 김우택. 작은 조직일수록 비효율을 줄여야 한다는 의식이 확고하다.

-2014년에 중국 화처미디어에서 513억 원을 투자 받아 이어 주식 시장에 상장했고 2015년엔 합자 법인 화책 미디어를 설립했는데, 올해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둔 치밀한 사전 계획이었습니까?

“그것도 계획적이었다기보다 그냥 우연히 기회가 왔어요. 그쪽 회장님이 방문하겠다고 해서 인사를 했는데, 우리 회사를 좋게 본 모양이에요. 작지만 경쟁력이 있다고 같이 해보자고, 투자 계약도 한 달 안에 일사천리로 이루어졌어요. 미디어 업이 자본 집약적인 비즈니스라 큰 회사도 경기를 잘 못 만나면 휘청거려요. 그런 상황에 튼튼한 자본을 갖춘 파트너로 갖게 된 건 행운이죠.

저는 무언가를 정교하게 의도하고 계획하진 않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준비했고, 사람과 돈이 준비되니까 도전적으로 펼칠 수 있었던 셈이에요.”

-3~5년 향후 사업 계획을 따로 세우진 않았다는 건가요?

“창사 이래 사업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어요. 물론 큰 틀은 있죠. 멋진 미디어 그룹이 돼야겠다는(웃음). 그런데 미디어 사업 하면서 한 번도 제 사업 계획과 맞은 적이 없어요. 많은 기회가 흘러갈 때 잡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뿐이에요. 큰 그룹이 되면 언젠가는 사업 계획을 세울 날이 올까요(웃음).

아무튼, 현재는 저는 직원들에게 보고서 만드는 것도 못하게 해요. 작은 조직은 효율적으로 일해야 하고, 상대적으로 비효율을 줄여야 하는데, 사업계획이나 보고서 만드는 것만큼 낭비가 없어요(웃음). 말로 몇 마디만 설명해도 다 알잖아요.”

-한류와 함께 미디어 업이 날로 발전하고 있어요. 콘텐츠 비즈니스는 많은 청년이 원하는 일이기도 하죠. 주목하는 인재상이 있습니까?

“똑똑한 사람 안 좋아해요(웃음). 똑똑한 사람은 오래 있지 않아요(함께 앉아 있던 홍보팀 직원들이 난처해 한다. “그럼 저희는 똑똑하지 않아서 여기 있다는 얘기?”). 저는 스펙도 안 봐요. 스펙이 좋으면 대기업에 가겠죠(홍보팀 직원들이 또 첨언하길 “우리 회사는 사장님 스펙이 가장 좋죠.”). 저는 꿈이 있는 사람이 좋아요. 꿈을 이루는 과정을 저와 함께하고, 배워서 나갔으면 좋겠어요.

저희 직원들 맨파워가 좋다고 하는데, 좋아서 하는 사람의 맨파워를 당할 수는 없어요.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 시너지가 엄청나죠. 저희는 음악팀도 5~6명 스포츠팀도 2명, 드라마팀 인원은 아예 없어요(웃음). 뮤직 앤 뉴(Music & New), 쇼 앤 뉴(Show & New)… 사업 분야는 많지만 적은 인원으로 프로젝트 그룹으로 가요.”

-얼마 전 신도림 테크노마트 판매동 4개 층을 300억 원에 인수했는데, 멀티 플렉스 극장 사업을 염두에 둔 시작인가요?

“물론입니다. 다들 CJ와 롯데, 메가박스가 90%를 장악한 환경에서 극장 사업 하는 게 맞냐고 하지만, 저는 계획이 있어요. 가진 게 없으면서 재벌인 척하고 싶진 않아요. CJ는 CJ답게, NEW는 NEW답게 그렇게 가는 게 맞다고 봐요.”

부드러운 곰의 표정에 대호의 기운을 지닌 김우택.

-경쟁력이 대체 뭔가요?

“준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모르면 잘 물어본다는 거예요. 새로운 분야에 들어가면 일단 초보자의 포지션에서 자연적인 질문들이 생기고, 그걸 물어보면서 기존 답습되던 관행이 깨지게 돼요.

드라마도 그랬죠. 저희는 영화를 하던 회사라 사전 제작이 익숙해요. 영화는 다 만들어 놓고 개봉하잖아요.
그리고 드라마 구조를 연구해 보니 돈을 못 벌게 돼 있어요. 제가 보기엔 그건 말이 안 돼요. 그래서 설사 흥행이 안 돼도 손해는 안 보는 상태로, PPL 수익이라든가 중국에 선판매 형식으로 구조를 짰죠.

현재 왜곡된 산업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앞으로 갈 수가 없어요. 중국 판권 문제며, 다 사전에 노하우가 있어서 가능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드라마 산업을 창작자의 입장에서 공격적으로 판을 짠 것에 대해서는 보람을 느껴요.”

-세기의 조합이라고 할 정도로 모든 ‘쾌’가 잘 맞아들어갔다고 보입니다.

“그렇죠. 방송국과 영화제작사, 김은숙 작가와 김원석 작가, 한국과 중국, 송중기와 송혜교… 운이 정말 좋았어요. 송중기가 군대에서 대본을 보고 결정해준 것도 정말 고마워요. 기획과 대본을 처음 제안한 영화제작자 서우식 대표가 그래요. 모든 사람이 행복해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다니 큰 행운이라고요.”

-아내(한완상 전 통일 부총리의 딸)가 큰 결정을 할 때 많은 도움을 준다고 들었습니다.

“네. 상의를 많이 하죠. 아내가 세계 YWCA 부회장인데, 저랑 꿈과 가치관이 비슷해요. 다만 저보다 배포가 세고 더 정의로워요. 저는 가끔 타협도 하는데, 아내는 그런 거 없어요(웃음). 예전에 중국 회사에서 큰돈을 제시하며 회사를 산다고 해서 잠시 고민한 적이 있는데, 아내가 “당신 꿈을 생각하라"고 호통을 쳤어요(웃음). 꽤 큰돈이었는데(웃음).

-리더로서 가진 가장 능력 중 어떤 부분이 커지고 있죠?

“공감하는 능력이 확실히 커졌어요. 맞고 틀리고 보다 일단 편견 없이 차분하게 들으려고 해요. “그럴 수도 있겠다"가 제 주제어예요. 공감 능력이 생기니까 그렇게 눈물이 많아져요(웃음). 집사람 말로는 여성 호르몬 분비가 활성화되는 것 같다고 하는데, 좋은 변화라고 봐요. 다만 그다음 판단은 냉정하게 하죠.”

”30대는 성공을 위해, 40대는 명예를 위해, 50대는 비로소 꿈을 위해 일합니다.”

-슬럼프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슬럼프는 우리 회사의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2013년에 너무 잘 됐을 때, 저는 곧 슬럼프가 올 거라는 걸 알았어요. 영화에서 많이 배웠으니, 그 코스트를 지불해야 할 때가 됐다고요. 옛날 같으면 안절부절못했겠지만, 짧게 극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죠. 그래서 그동안 다른 일을 준비할 수 있었고요.”

-30대, 40, 50대를 거치면서 점점 진화해 간다고 느낍니까?

“30대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성공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40대는 그 성공이 좀 더 명예로워지기 위해서 일했고요. 50대는 꿈을 위해 일하고 있어요.”

-항상 청년처럼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일합니까?

“네. 언제나 이 모습 이대로가 저예요. 전 미디어에 의해 해석된 저 자신이 달갑지 않아요(웃음).”

-존경하는 기업인이 있습니까?

“일 잘하고 똑똑한 CEO들을 만나면 멋있긴 해도 부럽진 않아요. 새로운 기법으로 돈 버는 사람을 봐도 신선하긴 해도 존경스럽진 않죠. 저는 기업인이든 말단 직원이든 꿈이 있는 사람과 얘기할 때 엔도르핀이 솟구칩니다.”

-마지막으로 NEW의 정식 사명이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인데, 다음 드라마는 계획하고 있습니까?

“없어요(웃음). 넥스트는 생각한 게 없어요. 공격적으로 할 때가 오겠지만, 우리 회사 체력에 맞게 또 기회가 올 거라고 봐요. 뮤지컬 할 때도 ‘디셈버' 다음에 3년 만에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했어요(웃음). 항상 다음이 뭔지는 모르는데, 뭘 던져도 할 수는 있는 상태가 바로 저희예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