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석조 예루살렘 특파원

한국의 1979년식 포니 자동차가 통통거리며 2016년 최신형 자동차와 나란히 도심을 달리는 나라가 있다. 지난달 말 이스라엘에서 홍해를 건너서 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선 포니와 1966년식 폴크스바겐 비틀 등 '박물관 차'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반만년 전 파라오 시대의 피라미드보다도 포니가 더 신기했다. 무인 자동차, 전기자동차 같은 최첨단 자동차는 이 나라에선 낯선 대화 주제다.

카이로 시내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손님이 한국인인 걸 알고는 "한국 차는 저렴하고 성능도 좋다"고 예찬을 늘어놓던 기사가 이내 "이집트도 한때 자동차 제조업에서 잘나갔다"며 자기네 자랑을 했다. 1950년대 말 탄생한 이집트 첫 자동차 회사 람세스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람세스는 나중에 나스르로 이름을 바꿔 확대 재설립했는데, 피아트 같은 유럽 차를 대량 조립 생산하며 중동·아프리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우리가 일본 도요타의 힘을 빌려 소형차를 겨우 조립 생산할 때였다. 50여 년이 지나 우리는 자동차 강국이 됐지만 이집트는 여전히 포니를 탄다는 사실이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하기보다 '이집트는 왜?' 하는 궁금증에 사로잡히게 했다.

"할아버지 때부터 변함없이 관광객을 상대로 낙타 태워주기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택시에서 내려 기자(Giza) 피라미드 일대를 돌아보는데 40대 초반 현지인이 낙타 두 마리를 끌고 다가와 말했다. 그는 "140기니(약 1만8000원)를 주면 1시간 동안 낙타에 태워 피라미드 관광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그는 이 장사로 집을 장만하고 차를 사고 아이를 키웠다고 했다. 한나절 낙타를 끌고 관광지를 돌아다니기만 해도 한 집안이 대대로 먹고살 수 있는 돈을 번다는 것이다. 해마다 1500만명이 피라미드를 보겠다고 몰려드는 '관광 대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라를 먹여 살렸던 관광업이 요즘 오히려 이집트 경제의 덫이 됐다. 국내총생산(GDP)의 11%를 책임지던 관광업이 반정부 시위와 무장 단체의 도발 등으로 정국 불안 상황이 지속되며 폭삭 주저앉았다. 2010년 125억달러(약 14조원)였던 관광 수입이 작년엔 60억달러대로 추락했다. 피라미드·아부심벨 등 고대 유적 관광업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제조업 등 다른 산업 분야를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 치명적 문제가 됐다. 재정 수입을 늘릴 별다른 방편이 없는 것이다.

이집트가 피라미드를 물려받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집트는 천연가스와 원유라는 자원을 갖고 있으며, 세계 최장(6800㎞) 나일 강이 관통하고 아프리카·유럽·중동의 교차로인 인구 9000만명의 대국이다. 이것들만 잘 활용했어도 청년 실업률 30%, 정제 기술력 부족에 따른 에너지 역수입, 외화 부족 등에 시달리는 지금의 이집트보다는 나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한때의 영광과 익숙한 돈벌이에 안주해 급변하는 지구촌이 부여하는 새로운 도전에 눈감는 '피라미드의 저주'에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