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피아니스트

찬란한 계절이다. 이맘때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구호처럼 외치는 말이 있다. "선생님! 야외 수업해요."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라 학생들 말에 맞장구치는 척하다 계속 강의를 진행했다. 정작 그 말이 밖에 나가 공부하잔 얘기가 아니라 다 제쳐두고 '휴강하자'는 뜻임을 알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이다.

'야외 수업'의 속뜻을 파악하지 못한 덴 내가 '밖에서' 강의할 수 없는 피아노 연주자라는 이유가 크다. 미세 먼지 없이 맑은 날, 넓다란 풀밭에서 혹은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바닷가에서 '해변의 피아노'를 연출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을까. 하지만 피아니스트들은 창문도 없이 사방이 꽉 막혀 있고 피아노 말곤 아무것도 없는 골방 같은 연습실에 들어앉아 있을 때 능률이 올라간다.

다양한 분야의 연주자들끼리 연주 여행을 떠날 때면 가벼운 악기를 목에 '장착'하고 있는 성악가와 피아니스트만 짐이 단출하다. 물론 현지에 도착하면 사정은 바뀐다. 느긋하게 호텔 방에서 연습할 수 있는 다른 연주자들과 달리 피아니스트는 '제대로 된 피아노'를 찾아 헤매야 한다. 공연이 예정된 곳의 피아노를 미리 쳐볼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을 때가 잦다. 유학을 해본 사람이라면 유명한 콘서트홀과 가까운 음악학교 연습실에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와 마주친 경험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무거운 악기를 선택한 피아니스트의 숙명이다.

새로 가는 공연장마다 처음 만나는 피아노와 '타협'해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내야 하는 피아니스트를 이해하는 청중은 그리 많지 않다. 청중은 콘서트홀에 준비된 피아노가 모두 완벽한 상태이며 표준적인 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악기로 만족할 만한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 피아니스트가 단시간에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나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처럼 자기 피아노를 갖고 다니며 연주할 수 있다면 나도 더 좋은 연주를 할 텐데…'라고 생각해보지만 희망사항일 뿐. 문득 피아니스트의 삶은 낯선 피아노와 줄다리기하는 일로 채워진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