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다.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개봉한 애니메이션 '주토피아'가 8주차가 되도록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머물러 있다. 2월 17일 개봉한 이 영화는 12일 2위에 올라 있다. 지금까지 본 관객만 394만명. 올해 개봉작 중 3위이다.
'주토피아'와 같은 흥행 양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영화는 개봉 4주차쯤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박스오피스 상위권에는 갓 개봉한 1주차 영화들이 올라온다. 12일자 박스오피스 10위권 영화 중 여섯 편은 지난 7일 개봉한 것이다. 2월 개봉 영화는 '주토피아' 단 한 편뿐이다. 개봉 날 1위에 오르지 못하면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양상과도 대조적이다. 개봉 날 박스오피스 4위로 출발한 이 영화는 개봉 4주차인 지난달 12일 1위에 올랐다. 그 이후로 1~3위를 계속 오갔다. 개봉 전 예매율 70%를 기록했던 '배트맨 대 슈퍼맨: 정의의 시작'은 지난달 24일 1위로 출발했다가 곧 '주토피아'에 밀렸다.
장기 흥행 양상은 '겨울왕국' '인사이드 아웃'과 같은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나타난다. '인사이드 아웃'도 4위로 개봉했지만 개봉 6일째 1위에 올랐다가 6주간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머물렀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스타 배우나 국내 관객을 유인할 만한 화제가 없어서 초반에 주목을 받지 못한다. 작품성과 재미가 있다는 것이 확인된 뒤에야 관객 동원이 시작된다. 대신, 어린이와 성인 관객을 모두 끌어모을 수 있어 다른 작품보다 흥행이 오래 지속된다. '주토피아'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주토피아'는 토끼와 여우 같은 동물을 의인화한 주인공을 내세운 애니메이션이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어울려 사는 '주토피아'란 도시에서 경찰이 되려는 한 토끼의 모험을 담았다. 개봉 전에는 '애들이 보는 영화'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극장에 갔던 부모들이 이 영화를 보고 입소문을 내기 시작하면서 흥행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애들만 보는 영화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 반대인 현실과 인종이나 외모에 대한 선입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회가 이 작품에 담겨 있다. '대부'와 같은 고전 영화를 패러디하거나 동물의 특성을 잡아낸 것도 성인을 겨냥한 유머다.
'주토피아'의 흥행 성공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변변한 경쟁작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봄은 영화계에서 '잔인한 4월'이라고 할 정도로 비수기다. 관객들이 나들이를 가느라 극장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주로 제작비 50억원 안팎의 국산(國産)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 영화가 개봉돼 흥행작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2012년 관객 411만명을 동원한 '건축학개론'이 대표적이다.
올해는 이런 비수기가 2월부터 찾아왔지만, '검사외전'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주토피아'와 같은 날 개봉한 '좋아해줘' '남과 여'는 평단과 관객의 외면을 동시에 받고, 금세 극장가에서 사라졌다. '귀향' '동주' 정도를 제외하자면 한국 영화 중 선전한 작품이 없다. 대신 '주토피아' '데드풀' '쿵푸팬더3'와 같은 외화들이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올렸다. '주토피아'는 한국 영화의 사라진 허리를 메워주면서 장기 흥행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