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따라잡기 성장'(catch-up growth)을 통해 빠르게 발전해 왔습니다. 부유해질수록 성장은 어려워지고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이제 '앞서가는 성장'(leading growth)을 이뤄낼 한국만의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Deaton·71·사진)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지난달 31일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대학교 캠퍼스 안 자택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5월 17~18일 제7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 특강을 하는 그는"선진국이든 저개발국이든 저성장에서 빠져나올 해법은 혁신(Innovation)"이라고 했다. 그는 고속 성장이 막을 내린 후 빈부 격차 고착화, 청년 실업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한국 경제의 해법을 묻는 질문에도 '혁신'뿐이라고 강조했다. 저서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을 통해 인류가 빈곤에서 어떻게 탈출했는지를 밝힌 디턴 교수는 "인류를 놀라운 속도로 성장시켜온 혁신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벨상이란 무엇인가?]

디턴 교수는 개개인의 소비 결정과 저축 행태 등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고찰해 소비자가 다양한 제품 사이에서 지출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사회의 소득이 얼마나 지출되고 저축되는지, 복지와 빈곤을 어떻게 측정하고 분석하는지를 밝힌 미시(微視)경제학의 대부(代父)다. 그런 그가 오는 5월 아시아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해 '혁신'을 얘기한다. 그는 소득 불평등, 빈부의 격차가 지나친 것은 문제가 되지만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성장의 동력이 되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점을 밝혔다. 그러나 저성장은 분배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게 만들어 인류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위험을 극복할 힘을 혁신에서 찾고, 혁신의 부작용까지 대비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논점이다.

―혁신을 위해 어떤 개혁이 필요한가.

"마법의 제도는 없지만 몇 가지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은 있다. 과도한 정부의 개입이나 공산주의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미 입증됐다.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지적(知的) 혁신(intellectual innovation)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리퍼블릭 오브 레터스'(republic of letters·17~18세기 유럽과 미국의 학자들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식을 확산시켜 나간 운동)가 유럽의 산업혁명보다 먼저 일어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아이디어의 공유가 결국 발전과 혁신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인데 요즘은 인터넷으로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발전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미국에 비해 프랑스의 성장 속도는 느리지만 프랑스의 최상위 1%는 더 큰 발전을 해왔다. 그런 발전은 국민 대다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포용적 성장을 실현시키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세금을 많이 걷어 복지를 향상시켰다. 그 국가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에서 포용적 성장이 이뤄지지 못한다는 우려가 많다.

"한국의 경우 중산층이 몰락하고 빈부차가 심해진다는 지적도 있지만 중산층의 공백이 생기는 것은 역으로 보면 똑똑한 청년들이 노력해서 올라가려는 동기를 준다는 점에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계층 간 이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 상류층이 아니면 발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나도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고(디턴 교수의 아버지는 광부였다)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의 부모는 문맹이었다. 이런 스토리가 많이 생기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재능이 빛을 보지 못하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

―한국의 불평등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불평등 관련 통계가 악화될 수는 있겠지만 브라질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나라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고 있을 때에는 모두가 과실을 얻을 수 있지만 성장 속도가 느려지면 다른 사람이 적게 가져야 내가 많이 가질 수 있는 상황이 된다. 그러면 갈등이 심화되고 정치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미국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글로벌 성장 정체 속에서 한국과 같은 후발국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지 않나.

"한국은 따라잡기 성장을 통해 빠르게 발전해왔는데 지금까지는 자동차나 컴퓨터를 잘 만들면 됐고 그걸 발명할 필요는 없었다.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발명 등 혁신을 통해야 성장할 수 있다."

디턴 교수는 지난해 12월 스웨덴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 다녀온 후 고관절 보조 장치 시술을 받는 등 건강이 좋지 못해 밀려드는 스케줄을 거의 소화하지 못했다. 그는 "1980년대 후반 잠깐 한국을 찾은 후 이번 방한이 사실상 처음"이라며 "이렇게 중요하고 흥미로운 나라를 방문하게 돼 매우 설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