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의 고교 2학년에 재학 중인 A양에겐 교복이 두 벌 있다. 아침 등교 시 입는 것은 입학 때 부모가 사준 단정한 교복이다. 오후 4시 반 학원으로 출발하기 전 A양은 또 다른 교복을 꺼내 입는다. 허리선이 쏙 들어간 재킷에 허벅지를 절반도 가리지 못하는 치마다. 모아둔 용돈으로 치마와 재킷만 추가로 구입해 수선집에서 고쳤다. A양은 "교칙 때문에 교내에선 '촌스러운' 스타일로 입고, 학원에 갈 땐 '맞춤' 스타일로 입는다"며 "부모님껜 비밀이기 때문에 두 번째 교복을 세탁하지 못한 지 몇 달 됐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고교 2학년인 B군은 지난 몇 주간 부모를 조른 끝에 교복 바지를 한 벌 더 샀다. 입학 시 친구들을 따라 다리를 넣기 힘들 만큼 꼭 맞는 바지를 샀지만 요즘은 친구들이 모두 통이 적당히 넉넉한 스타일을 입기 때문이다. B군은 그는 "'스키니 교복'을 입고 장난치다가 솔기가 쭉 뜯어져 체육복 입고 귀가하는 친구를 여럿 봤다"며 "지금의 바지로 갈아입으면서 행동은 편해졌지만 이것도 언제 유행이 바뀔지 모른다"고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학생들이 교복 문제로 학교나 부모와 갈등을 빚고 있다. '스타일에 울고 웃는' 요즘 아이들에게 교복 리폼은 양보할 수 없는 요소다. 학교 관계자들에 따르면 교복을 고쳐 입는 학생들 나이는 주로 중학교 2학년부터 고교 2학년이다. 교사들은 "중 1은 학교에 적응 중인 시기라 옷을 수선할 생각을 못하는 것 같고, 고 3은 입시 때문에 옷차림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했다. 대체로 여학생이 수선하는 것은 치마와 재킷으로, 길이는 짧고 품은 꼭 맞도록 고친다. 다만 플레어스커트를 활용한 교복은 길이를 줄이면 예쁘지 않아 무릎 아래로 내려 입는다. 남학생 교복은 몇 년에 한 번씩 유행이 바뀐다. 경기 지역에서 20년째 교단에 섰다는 C교사는 "한때 통 넓은 바짓단으로 바닥을 쓸고 다니더니 몇 년 전엔 입고 벗기도 힘들 만큼 딱 맞는 스타일로 바뀌었고, 최근엔 약간 여유 있고 깡총한 디자인을 많이 입는다"고 설명했다.
교복 착용 실태에 대해 교사들은 대부분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서울 강동구의 D교사는 "교단에서 보면 짧은 치마를 입고 단정치 않은 자세로 수업받는 여학생이 많다"며 "남자 교사 보기 민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학생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도 옳지만, 그건 사복 입을 때의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서울 광진구의 E교사는 "학교가 엄격히 제재하고 있지만 교문 밖 차림까지 단속하긴 어렵다"면서도 "그 차림으로 밖에서 사고라도 날까 봐 늘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학부모들 시선도 곱지 않다. 학부모 한모(47·서울 노원구)씨는 "한겨울에 짧은 치마를 입거나 한여름에 꽉 끼는 바지를 입은 아이들을 보면 건강 문제도 걱정된다"고 했다.
교복 문제는 학생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학부모 김모(50)씨는 "교복 조금 줄이는 것이 심각한 일탈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품이나 길이로 개성을 표출하는 것조차 막는다면 아이들이 너무 답답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재학 중인 F양은 "주변에서 하나 둘 치맛단을 줄이니 혼자 뒤처지는 것 같아 결국 고교 2학년 때 수선해 입었다"며 "해야 할 공부를 다하면서 옷도 예쁘게 입으면 좋은 것 아니냐"고 했다.
이연정 순천향대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극적으로 교복을 줄여 입는 또래문화를 공유함으로써 소속감과 안정감을 찾고 싶어하는 것은 자아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기의 특징이다. 강압적으로 제재하면 결국 몰래 하다가 부모와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청소년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겠다는 마음으로 '왜 하고 싶은지'를 들어주고 합의 지점을 찾아내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