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책보다 저렴한 신간이 이번 주에 나왔습니다. 어리둥절하시겠죠. 하버드 대학 역사학과 니얼 퍼거슨 교수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던 '더타임스 세계사'(리처드 오버리 총괄편집·예경) 이야기입니다. 퍼거슨 교수는 "만일 우리가 평생 역사책을 단 한 권만 소장해야 한다고 하면, 이 책을 제쳐두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극찬했었죠.
'더타임스 세계사'가 명성을 떨친 이유는 그 화려하고 풍성한 지도 때문입니다. 원래 이 책이 처음 출간된 1978년의 원제는 The Times Atlas of World History. 아틀라스(Atlas) 자체가 지도책이란 의미가 있잖아요. 100여명의 역사학자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를 집필한 내용도 호평을 받았지만,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수작업으로 완성한 600여장의 지도가 포함된 초판(初版)은 큰 환호를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래 A출판사가 2010년 두 권의 책으로 나눠 냈었죠. 그때 제목은 '지도로 보는 타임스 세계역사'. 익히 그 명성을 들었던 터라, 국내 첫 번역 출간을 반가워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하지만 가격은 무려 권당 12만원. 그런데 A출판사가 부도나면서 책도 절판됐고, 예경이 이번에 그 판권을 인수해 펴낸 겁니다. 같은 분량을 한 권으로 압축한 예경 판의 가격은 5만6000원(스페셜 에디션). 알라딘 등 인터넷 중고 서점에서는 아직도 중고본에 권당 10만원의 호가(呼價)가 붙어 있더군요. 그러니 '중고보다 저렴한 신간'이라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거죠.
호사가(好事家)적인 책값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했지만, 결국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책의 내용적 가치에 있을 겁니다.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건 결국 선별과 여과의 긴 역사죠. 비유하자면 '더타임스 세계사'는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지도입니다. 광대한 정보의 바다에서 눈앞의 정보만 안내하는 게 아니라, 오대양 육대주의 지구에서 나는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지,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이번 주말에는 시공간의 맥락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점검해 봐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