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초 경기필에 취임하자마자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연주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어요.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경기필은 아직 이른 것 같다'였죠."
한려수도의 비경(
)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남 통영의 미륵산 자락. 그 언덕에 올라선 통영국제음악당에서 26일 만난 성시연(41)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는 "그로부터 2년. 짧은 시간인데 정비를 단단히 해서 마침내 무대에 섰다"며 "연주를 끝내고나니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지만 나도, 단원들도 말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고 했다.
전날인 25일 '2016 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공연에서 성시연과 경기필은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로 통영의 밤을 힘있게 달궜다. 어둠이 내려앉자 하나둘 켜진 웨딩홀과 횟집, 아파트의 불빛들이 통영 앞바다를 별빛처럼 감쌌고, 음악당은 축제를 즐기러 온 클래식 애호가들과 주부, 교사, 학생 등 통영 시민들로 북적였다.
바그너 최후의 음악극인 '파르지팔' 3막에서 경건하게 흐르는 '성 금요일의 음악'을 시작으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빌데 프랑)을 봄바람 꽃내음같이 하늘하늘하게 연주한 경기필은 '영웅의 생애'에서 특유의 거칠고 터질 듯한 사운드를 토해내며 1300석 규모의 콘서트홀을 구석구석 누볐다. 슈트라우스가 30대 중반에 완성한 이 작품은 야망으로 꿈틀대는 한 영웅의 일대기를 여섯 줄기로 그려낸 것. 젊고 순수한 사나이 곁엔 그를 시기 질투하는 적도 있지만 포근하게 그를 품어주는 필생의 연인도 있다. 하지만 신념과 의지는 영예로운 투쟁 속에서만 제대로 영그는 법. 영웅은 한층 어른스러워진 모습으로 전쟁터로 나서고, 격렬한 전투 끝에 적들과 승부를 벌여 끝내 승리를 거머쥔다. 성시연이 말했다.
"저는 솔직히 제 어머니를 떠올리며 이 곡을 지휘했어요. 나폴레옹, 베토벤, 오바마 대통령처럼 역사적으로 대단한 인물은 우리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건들진 못하니까 영웅이라 할 수 없어요. 역할 모델은 될 수 있어도." 그는 "좀 더 젊은 시절의 나는 음악에 대한 열정은 있었지만 파고들어 뭘 해봐야겠다는 투지는 없었고 게을렀다"며 "그런데 독일 유학 중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어머니는 내가 꿈을 버리지 않게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고 했다. "그때부터 음악도, 인생에 대한 사명감도 뜨거워졌어요. 하루 세 시간 이상 자본 적 없을 만큼 가혹하고 엄격하게 살았죠. '짧고, 굵게' 그 농축도가 강렬한 사운드에 쌓였을 거예요."
피아니스트 백건우, 소프라노 마리솔 몬탈보, 현악사중주 카잘스 콰르텟 등 음악가들이 포진한 이번 음악제는 다음 달 3일까지 통영 일대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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