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출신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 미술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Dali·1904~ 1989)의 작품을 아는 사람에게 맡겼다가 돌려받지 못했다는 신고가 들어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 그림이 정말 달리의 작품이라면 값어치가 수십억원대에 이르지만, 진품(眞品) 여부부터 그림이 한국으로 들어온 경위까지 석연찮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미술 전문가들은 밝혔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돈을 빌려주기로 약속하고 받은 미술품을 빼돌린 혐의(횡령)로 A(50·무직)씨를 조사 중이라고 23일 밝혔다. A씨는 2014년 자금난에 빠진 건강식품업체 대표 김모(여·69)씨에게 "달리의 작품 '나르시스'를 내게 맡기면 그걸 담보로 20억원을 빌려 오겠다"며 그림을 가져간 후 지금까지 돌려주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경찰에서 "나는 20억원을 빌려준다는 유명한 사진작가에게 그림을 전달해주는 심부름꾼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A씨가 언급한 사진작가는 "A씨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달리의 그림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씨와 A씨를 대질심문하고 사진작가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김씨가 신고한 '나르시스'는 가로 60㎝, 세로 45㎝ 크기 유화(油畵)다. 김씨는 이 그림이 달리의 작품인 '나르시스의 변모'(1937년)의 원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6·25 때 한국인 여성 집에 머물던 유엔군 장교가 집주인에게 이 작품을 줬고, 1995년 교회에서 만난 이 여성이 내게 그림을 기증했다"며 "그림 입수 경위를 더 이상 자세히 밝힐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 그림은 공식 단체나 협회를 통해 진품 검증을 받은 적이 없다. 김씨는 "지난 2008년에 이탈리아 국립문화재복원대학 총장인 유근상(52)씨로부터 진품임을 증명하는 감정서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위작(僞作)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감정서엔 "달리가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 중 르네상스 시대의 스푸마토(sfumato ·사물의 윤곽선을 자연스럽게 번지듯 그리는 방식) 기법과 원근법을 접하고 감명받아 그린 그림"이라 적혀 있다. 이에 대해 정준모(59) 미술평론가는 "달리가 이탈리아를 여행한 것은 1937년 7월인데, '나르시스의 변모'는 그 이전에 이미 완성돼 있었다"며 "감정 내용을 믿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