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敵)을 만들지 마라.'

아버지로부터 처음 받은 편지였다. 23세에 남보다 늦게 해군에 입대했던 그해 4월. 진해의 봄은 색보정을 한 것처럼 푸르렀다. 고흐가 붓터치를 한 것 같은 새파란 하늘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나의 빡빡머리는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악악" 소리를 지르고 얼굴이 꺼멓게 타들어갔다. 그 무렵 받은 그 편지는 이런 구절로 이어졌다.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그렇게 살지 못한 건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아들인 나도 그렇게 살지 못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에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썼다. 그 대가를 치르는 매일매일은 전쟁이다.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들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고 했지만 나는 그 전쟁 속에 강해지지 못하고 지쳐갈 뿐이다. 아군과 적군만 있는 어른의 세계에서 어제와 오늘도 살아남았지만 승자는 내가 아닌 것 같다. 매일 패배다. 덕분에 나는 패배를 축하하는 술을 끊지 못한다. 무너진 성터 같은 위장을 움켜쥔 채 오후만 있는 휴일을 마주할 때 나는 지나간 시간을 후회한다. 그리고 나를 위로해줄 무언가를 찾아나선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이성으로 최선의 해장을 궁리한다면, 나의 선택은 서울 용두동의 '어머니대성집'이다.

밤 9시부터 다음 날 오후 4시까지 문을 여는 '어머니대성집'에는 쓰린 속을 달래려는 과거의 술꾼과 배를 채우고 취하려는 현재의 술꾼이 함께한다. 싸우듯 술을 마신 금요일 밤이 아련한 토요일 오후, 동대문 근처 이면 주차 때문에 늘 차가 밀리는 맥락 없는 뒷골목 모퉁이에 단정히 자리한 식당에 들어서니 뒷골목만큼 조촐한 풍경이 펼쳐졌다. 동그란 원탁 몇 개, 뒤로 평상과 작은 방. 손님이 뜸한 휴일 오후에 봄비까지 내리니 낮술을 즐기는 객(客)들은 이미 불콰해졌다. 1967년에 문을 열었다는 이 집 탁자를 쓰다듬으며 해장국(7000원·사진)을 시켰다. 그것만으로는 아쉬워 꼬치산적(1만원)을 하나 곁들였다. 들은 이야기로는 이 집 육회비빔밥(1만5000원)과 모둠수육(3만5000원)도 명불허전이라 한다. 술안주로 좋다는 뜻이겠다.

빗소리를 벗 삼아 멍하니 꺼진 텔레비전을 바라보노라니 아주머니가 반찬을 놓고 갔다. 무생채, 조개젓, 김치와 잘게 썬 청양고추 한 종지였다. 뒤이어 나온 산적을 꼬치째 씹어 먹으니 나는 어젯밤처럼 다시 호기로워졌다. 구운 파는 달았고 간장에 절여 구운 고기는 씹는 맛이 살아있었다. 뚝배기에 담긴 해장국은 단연 이 집의 주인공. 다진 고기가 위에, 큼지막한 선지가 밑에 깔린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마시니 꼬인 속은 풀리고 몸에서 은근히 땀이 흘렀다. 토렴한 밥알은 식도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내려갔다. 부담스럽게 끓어오르지 않는 이 집 국물의 온도는,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아 향과 맛을 즐기는 데 최적이라는 섭씨 85도에 가까운 것 같았다. 된장으로 간을 한 섭씨 85도 해장국은 이내 바닥을 드러냈다. 이 집 국물은 순하디 순한 나머지 모난 구석이 없었고 그래서 적(敵)이 없는 국물이었다.

해장국 한 그릇에 가뿐해진 몸을 일으키려니 가게 문이 열리고 남자 둘이 들어왔다.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그 둘은 해장국을 포장해 달라며 아주머니에게 "맛있어서 또 왔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그 말에 동의하며 밖에 나오니 여전히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군도 적군도 없는 토요일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