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전이 폭력으로 얼룩졌다. 인종·여성·종교차별 언행으로 비판을 받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일부 반대파가 실력 행사에 나서면서, 트럼프는 시카고(11일)와 오하이오·미주리(12일)에서 유세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트럼프 유세장에서 간헐적으로 일어나던 반대 시위와 퍼포먼스가 조직화하면서 충돌 사태는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번 폭력 사태의 원인을 놓고 각 당 대권 주자는 물론이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트럼프에게 책임을 돌리면서 미국 대선에 유례없는 '사건'으로 번졌다. 특히 대의원 367명을 뽑아 미 대선 경선에 분수령이 될 '미니 수퍼 화요일(15일)' 판세에 이번 충돌 사태가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유세장 멱살잡이 - 12일(현지 시각) 미 대선 공화당 경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유세하던 도중, 트럼프에게 항의하는 시위대와 지지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시위대는 유세장에서 퇴장당했다. 같은 날 트럼프의 데이턴 공항 유세에서는 괴한 1명이 연단으로 돌진해 연설이 2분 정도 중단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충돌 사태는 지난 11일 시카고 일리노이대 대강당에서 시작됐다. 트럼프 지지자와 반대파가 논쟁을 벌이다 주먹다짐으로 이어졌고, 행사장 밖에서도 양측이 첨예하게 대치하면서 트럼프는 유세를 포기했다. 히스패닉계 유권자 1000여명은 트럼프의 '반(反)히스패닉' 막말에 항의했고, 곳곳에서 말싸움과 몸싸움을 벌였다. 12일 오하이오주 데이턴 유세에서는 괴한 1명이 트럼프에게 돌진하는 아찔한 사태가 벌어졌다. 유세 내내 시위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연설을 방해했다. 이에 트럼프는 "이슬람국가(IS) 관련자가 나를 공격했다" "샌더스 지지자들은 엄마한테나 가라"라고 조롱하고 비난해 논란을 이어갔다.

'반트럼프' 시위에 대해 다른 후보들은 하나같이 트럼프에게 책임을 넘겼다. 시카고 충돌 사태 때 인근에 있던 테드 크루즈 연방 상원 의원은 "이번 사태의 책임은 트럼프에게 있다. 트럼프가 증오와 폭력을 부추긴 결과"라고 했다. 마코 루비오 연방상원 의원과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는 '경선 불복'까지 암시했다. 이들은 "분열과 폭력을 조장하는 언행을 보이는 트럼프가 후보가 된다면, 당 전체가 해체될 수 있다"며 "트럼프를 지지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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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나섰다. 그는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민주당 정치자금 모금행사에서 "대선에 출마한 사람은 우리가 어떻게 잘해나갈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모욕과 조롱, 사실 조작, 편 가르기를 하지 마라"고 했다. 트럼프가 히스패닉계 등 소수인종과 무슬림을 비하해 이런 사태로 번졌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 의원도 트럼프에 대해 각각 "정치적 방화" "멕시코인과 흑인에 대한 상스러운 방식의 모독" 때문에 폭력을 유발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반대 시위는 12일 경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D.C.와 와이오밍 경선에서 루비오와 크루즈가 각각 1위를 차지한 반면, 트럼프는 이날 대의원을 1명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미니 수퍼 화요일'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트럼프의 자질에 대한 각성이 시작되면서 반대 흐름이 큰 물살을 탈 것이라는 해석이다.

반면 12일 경선 지역은 중도파가 많은 곳이라 트럼프에게 불리했던 것이지, 15일 5개 주(州)에서 벌어지는 경선은 다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특히 일부 전문가는 소수인종의 유세 방해에 반발하는 백인 보수층이 결집하면 공화당 경선에서는 트럼프 지지율이 더 오를 수 있다고 봤다. 트럼프도 이런 점을 의식해 "표현의 자유는 어디로 갔나. 헌법 내 권리를 지키겠다"고 하는 등 '(공화당) 집토끼'를 더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