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한 카페 계산대 앞에 선 바리스타 윤혜령(31)씨가 손님의 입 모양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윤씨는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는 1급 청각 장애인이다. 그러나 손님의 입술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라는 손님 말을 정확히 읽어내더니, 손님에게 "매장에서 드시고 가시겠어요?" 하며 또박또박 물었다. 그는 수화(手話)도 전혀 쓰지 않았다.

윤씨는 네 살 때 청각 장애 판정을 받았다. 윤씨의 어머니 서은숙(61)씨는 "또래보다 말을 배우는 속도가 더딘 것 같아 병원에 데려갔다가 '혜령이에겐 청력(聽力)이 없다'는 진단을 받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고 했다. 강원도 삼척에서 작은 음식점을 하던 서씨는 장사를 접고 삼척을 떠나 서울로 왔다. 딸의 청력을 되살려보려고 서울의 큰 병원은 다 찾아다녀봤지만, 병원마다 '이미 늦었다'는 말만 했다.

서씨는 윤씨가 다섯 살 되던 해 서울의 한 농학교를 찾았다가 큰 충격을 받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고 했다. 서씨는 "농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일곱 살이 넘어서도 말을 잘하지 못하고 괴성을 지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내가 손수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청각 장애인 바리스타인 윤혜령(오른쪽)씨가 자신의 일터인 서울 마포구 김태이로스팅하우스에서 어머니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씨는 커피 관련 자격증 8개를 갖고 있다.

[[키워드 정보] 사물인터넷(IoT)란?]

서씨는 그길로 매일 딸에게 뻥튀기 과자를 혀로 녹여 구멍을 뚫게 하는 놀이를 시켰다. 딸의 혀가 굳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파'라는 발음을 가르치려고 종이를 찢어 불게 했고, 코를 움켜잡고 '마'라는 소리를 내게 해 비음(鼻音)도 깨우쳐줬다. 입으로 소리 내지 않으면 한번 익힌 단어라도 금세 잊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딸이 그림책을 보며 소리 내 읽게 시켰다. 윤씨는 "당시엔 그런 엄마에게 '고맙다'는 소리조차 못 낸 내가 미웠다"고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윤씨는 "엄마"라고 말할 수 있었다. 서씨는 "혜령이가 안쓰러워도 속으로 눈물을 삼켰는데 그날 우리 딸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서씨는 윤씨를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이 윤씨를 따돌렸다. 학부모들도 "특수학교에 보내지 않고 왜 일반학교에 와서 피해를 주느냐"며 항의했다. 결국 윤씨가 4학년이 되던 해, 가족은 미국령 사이판으로 이민했다. 그러나 사이판에서 음식점을 연 지 2년도 안 돼 닥친 IMF 외환 위기 때문에 빚을 지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모녀는 멈추지 않았다. 윤씨는 독학으로 검정고시 준비를 해 초·중·고교 졸업 자격을 땄다. 19세 때부터는 웹디자이너 일을 5년가량 했다. 윤씨는 "그때는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워 컴퓨터로 하는 일을 택했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가 되찾아준 목소리를 썩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가슴속에 남아 윤씨를 채찍질했다. 바리스타 공부에 매달렸다. 커피 관련 자격증이 8개나 되는 전문 바리스타로 윤씨를 키운 힘은 결국 '어머니'였던 것이다. 윤씨는 "이제는 매일 손님과 만나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서씨와 윤씨 모녀는 최근 LG유플러스 광고 모델로 등장했다. 윤씨 같은 청각장애인도 IoT(사물인터넷) 서비스를 설치할 수 있는지 통신사에 문의한 게 계기가 됐다. 통신사 측이 윤씨를 직접 만나 서비스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모녀의 사연을 알게 됐고, 사내 논의를 거쳐 모델로 기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바리스타 윤혜령씨의 아주 특별한 하루'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유튜브 조회 수가 500만 회를 넘었다. 광고에서 모녀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지금처럼 항상 제 곁에 있어주세요." "내 딸로 태어나줘 고마워, 혜령아." 서로 바라보는 모녀의 얼굴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