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울산에서 여자친구의 헤어지자는 말에 살인범으로 돌변, 연인과 연인의 여동생까지 살해한 범인이 붙잡혔다. 데이트 폭력이 이별살인으로 이어진 전형적인 사건이었다. 지난 2015년은 데이트 폭력이라는 단어가 화두가 된 해이기도 하다. 2005년 무렵 이 단어가 등장했을 때만해도 이성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서 폭력이나 강간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데이트, 연애 등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쉬쉬해오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져왔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최근 가까운 사람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은밀하고 교묘하게 행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범죄행위임을 인식하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데이트 폭력의 유형

왜 이런 일이? 그 사람, 내가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미녀와 야수' 콤플렉스

데이트, 부부 강간 폭력은 가장 친밀한 사람으로부터 일어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 내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내가 잘 안다고 여겨왔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인 상대에게 적의나 원한보다 인간적인 연민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의 폭력적 성향이 일어나기 이전의 모습들을 상기시키며 "누구나 단점은 있는데…" "그런 점만 빼면 괜찮은 사람이다"라며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묵인하고 합리화시킨다. 또한 이런 관계는 늘 애정과 폭력성이 공존한다. 함께 보낸 시간이 길어지고 친밀함이 깊어지면서 학대를 애정으로 생각하거나, 자신을 때리는 연인을 왜곡된 긍정적 모습으로 바라본다. 그러다 겉잡을 수 없이 사태가 심각해지면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내가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미녀와 야수' 콤플렉스에 빠진다. 난폭한 야수가 미녀 벨을 만나 멋진 남성으로 변화는 동화 '미녀와 야수'는 그야말로 동화이다. 그리고 난폭한 야수는 저주에 걸린 것일 뿐, 원래 멋진 왕자님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데이트 폭력을 행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력적 성향을 잠재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폭력적 성향은 이성관계에서 때때로 자신감과 당당함이라는 매력으로 비춰진다. 사랑과 보호받고 싶은 마음이 큰 여성일수록 남성들의 자신감과 당당함 때로는 강압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에 마음을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

대중문화 속 '데이트 폭력'

데이트 폭력이나 이별 범죄가 빈번해지자 '안전이별'이라는 피해자가 되지 않고 무탈하게 연인과 헤어지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안전이별의 이면에는 "카톡으로 헤어지자고 하면 예의 없다고 살해, 만나서 이별을 통보하면 눈빛이 맘에 안 든다고 살해"라는 자조가 담겨 있다. 너나없이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낳은 말이다. 헤어지자는 연인을 살해하고 시멘트로 암매장한 사건, 옛 여자친구에게 염산 테러를 한 사건 등 각종 강력사건이 잇따르며 연인 간 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현실을 풍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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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 강호순은 살인범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의 범죄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이웃들은 하나같이 "솜씨가 좋고 싹싹한 사람이었는데…" 라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 상주 농약 독극물 사건은 피해자들이 가해자와 가까운 이웃이었다는 점에서 마을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오래 알아온 평범한 이웃 노인이 또래 할머니들에게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누구도 믿을 수 없다라는 불안감을 안겼다.

왜 이런 일이? 매일 보는 사람은 안전할 거라는 착각 '근접 효과' 

이런 사건에서 가해자가 쉽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배경 중 하나가 '근접효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숙한 얼굴의 사람에게서 친분과 호감을 느낀다고 한다. 실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않았고 얼굴 정도만 아는 사람도 정기적으로 마주치다보면 상대에 대한 경계심과 긴장을 푼다.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음에도 자주 봤다는 이유로 친숙해지고, 친숙하다는 이유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2009년 7명의 여성을 잔인하게 죽인 연쇄 살인범 강호순은 겉으로는 자상한 아빠, 싹싹한 이웃으로 평범한 삶을 사는 것처럼 위장했다.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범죄 행위를 들키지 않고 지속적으로 부녀자들을 살해할 수 있었던 데에는 '친숙한 이웃'이라는 이미지도 한몫했다. 상주 농약 독극물 사건은 익숙한 장소에서 매일 보는 이웃이라는 점이 범행에 주요한 영향을 끼쳤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자주 가는 장소에서 평소에 자주 어울렸던 이웃으로부터 변을 당했다.

대중문화 속 '연쇄살인범'

얼마 전 인기리에 막을 내린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도 '근접효과'를 이용한 연쇄살인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시그널 9, 10화에 걸쳐 나온 연쇄살인범 김진우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면서 훤칠한 외모, 다정한 태도 등을 이용해 피해자들의 경계심을 허문다. 그를 오랫동안 평범한 아르바이트생으로 지켜본 사람들은 그를 알고 있다고 착각해, 19년동안 편의점 손님들을 죽여 온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아동 성범죄·아동학대 등 아동 범죄의 가해자 또한 아이들과 잘 알고 있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특히 아동 성범죄 가해자의 60%는 면식범이라는 통계도 있다. 2015년 일어난 어린이집 교사 폭행 사건은 아이들이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집 교사로부터 일어났고, 작년 한해동안 학교는 교사에 의한 성범죄로 시끄러웠다. 모두 애정 또는 훈육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의 권위를 사용하여 아이들을 억압하는 범죄 행위이다. 자신과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교사들에게 피해를 입은 만큼 아이들의 후유증도 훨씬 더 오래가고 심각하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지위가 주는 안도감'

대부분 아이들은 교사나 이에 준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보호자, 또는 부모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해 믿고 따른다. 아이의 부모 역시 아이의 생활을 교사에게 일임하고 상담하면서 이들을 신뢰한다. 특히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아이를 믿고 맡길 데가 부족한 한국의 부모들은 공신력 있는 기관의 평가나 자격증이 있는 교사 또는 상담사라는 단어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작년 어린이집 교사 폭행 사건이 일어난 어린이집도 사건이 일어나기 한 해전 보건복지부 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95.36점을 받는 등 '안전하고 평화로운 어린이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곳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아이를 맡길 때, 신뢰할 수 있는 근거는 자격증, 면허증 또는 교사 또는 상담사라는 신분 뿐이다. 이러한 공신력 있는 지위와 자격증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을 위협적이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해 안도한다. 사회적 신분, 자격증에 가려져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아이들을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대나 폭력이 일어나면 아직 상황판단을 하기 어려운 아이들은 자신을 보호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선생님이나 교사의 말을 참고 따르게 된다. 부모 역시 폭력의 징후를 발견해도 CCTV같은 확실한 물증이 나올 때까지 아이에게 또다른 불이익이 있진 않을까하며 조심스러워진다.

대중문화 속 '아동 성추행'

영화 '스포트라이트 (2015)'로도 만들어진 '보스턴 가톨릭 사제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들은 다름 아닌 성직자들이다. 이 사건에서 90여명에 이르는 신부가 아동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 영화 속에서 여러 피해자들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에 대해 말한다. 피해자들은 당시 부모의 이혼 가정 불화 등 외롭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었고, 부모와 마을 전체가 신뢰하고 권위를 부여한 상대이기 범죄 사실에 대해 묵인할 수 밖에 없었다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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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를 일삼던 부모들이 급기야는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엽기적인 사건들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2013년 울산과 칠곡 계모 사건을 시작으로 최근 일어난 평택 실종 아동 사건 모두 재혼가정에서 일어났고 아이들을 상대로 상식 밖의 폭력과 학대가 이뤄졌다. 이 사건들은 과거 훈육 과정에서 일어나던 아동학대가 아니라 아이의 존재 자체를 귀찮아하고, 부정하는 부모의 미성숙에서 오는 학대였다.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아동학대와는 달리 아이에게 무차별적이고 가학적인 학대의 정도가 점점 심해져 아이를 결국 죽음에 까지 이르게 했다.

왜 이런 일이? 미성숙한 부모· 가족구조의 문제

최근 신문지상을 장식했던 대부분 아동학대 사례들은 가족구조에 따른 가정불화에 기인한 것이 많다. 울산 계모사건과 칠곡 계모사건 모두 친모가 아닌 계모에 의해 학대가 이뤄졌다. 모든 재혼가정이나 이혼가족 그런 것은 아니나 이들 가족의 경우 구성원들 간의 유대가 견고하지 못한 편이다. 긴밀하지 못한 가족 유대 속에서 불화가 쌓였을 때 그 스트레스와 불안은 대부분 아이를 향한다.

핵가족화 이후 태어난 세대 일부는 부모의 역할과 육아를 제대로 학습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미혼 가정 역시 아이에 대한 이해와 육아 지식이 없다. 이 두가지의 경우 예상치 못한 양육 스트레스로 인한 부모의 미성숙함과 불안이 아이에게 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살인사건 중 존속살인의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가 전체 살인사건에서 존속살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2%대인 반면 한국은 5~6%대를 나타내고 있다. 자식이 부모 또는 부모와 비슷한 항렬의 친족을 살해하는 존속살인은 효의 개념을 중시하는 유교적 문화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살인 사건보다 훨씬 중하고 심각하게 다뤄져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범죄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존속살인 뿐만 아니라 자녀 살인, 가족간의 상해 폭력 폭행 역시 건수가 증가하는 추세다.

왜 이런 일이? 꽁꽁 감추다 속에서 곪아터지는 '가족갈등'

2008년부터 18개월간 발생한 존속살인의 동기를 조사한 경찰청 자료를 보면 정신적 문제가 43.1%, 우발적인 것이 19.4%, 상습 폭행과 가정 불화가 13.8%를 차지했다. 한국은 '가족 일은 가정 내에서 처리한다'는 인식이 뿌리 깊어 특히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규원 한국가족학회 회장은 "유교적 전통은 점점 사라지는데 여전히 부모는 자식을 소유하려 하고 자식은 의무를 지려 하지 않기 때문에 가정 내에 갈등이 늘 내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족 살인을 '울타리 살인'이라고 말한다. 가족이란 '울타리'에 갇혀 있다 보니 안에서 곪던 문제가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웅혁 경찰대 교수는 "가정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억압과 좌절감이 가족이란 좁은 '울타리' 안에서 분출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사회·경제적 문제로 분노한 사람이 '위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가족에게 위로받지 못할 때 '칼끝'이 역설적으로 곁에 있는 가족에게 향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기사 더보기

참고문헌 : 친밀한 범죄자 / 웬디 L. 패트릭 저 / 알에이치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