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성의회관에선 조촐한 장학 증서 수여식이 열렸다.
이 대학 의과대학의 심봉섭(90) 명예교수가 의예과 2학년 임재학(21) 학생에게 증서를 내밀자 나비넥타이를 맨 송승일(74)씨가 손뼉을 쳤다. 수여식이 끝나자 송씨는 심 교수에게 "존경하는 스승님 이름으로 장학금을 줄 수 있게 돼 영광"이라고 인사했다. 심 교수는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줘 고맙네" 하며 송씨 손을 꼭 잡았다.
송씨는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샌디에이고에서 암 전문의로 일하고 있다. 그는 최근 모교(母校)에 후배들의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20만달러(약 2억4000만원)를 기부하면서 특별한 부탁을 했다.
장학 기금 이름에 스승인 심 교수 이름을 붙여달라고 한 것이다. 송씨는 그렇게 만든 '심봉섭 교수-송승일 동문 장학금'의 첫 장학 증서를 수여하는 기회도 심 교수에게 돌렸다.
송씨는 의대 1학년이던 1960년 심 교수를 처음 만났다. 당시 송씨는 엄격한 도제(徒弟)식 교육으로 유명한 의대 수업에서 질문을 자주 하기로 유명한 '괴짜' 학생이었다고 한다.
"멀쩡한 세포가 어떻게 암세포로 변하느냐"처럼 다른 학생들은 묻지도 않는 질문을 많이 해 교수들을 곤란하게 했다고 한다. 송씨는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심 교수님이 '멍청한 질문'이란 없다며 유독 답을 잘 해주셨다"고 했다.
송씨는 1966년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미국 병원에서 인턴 과정 1년을 마치고 나자 갈 곳이 없었다. 소식을 들은 심 교수는 친분이 있는 미국인 교수를 통해 송씨가 펜실베이니아대 병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보낼 수 있게 해줬다.
그러나 송씨는 수업을 쫓아가지 못해 1년여 만에 레지던트 과정에서 낙제했다. 며칠간 밤잠을 설치던 송씨는 심 교수에게 자초지종을 편지로 써 보냈다. 얼마 뒤 심 교수에게서 "알겠다. 아쉽다"는 짧은 답장이 왔다. 송씨는 "심 교수님 답장을 받고 스승을 실망시킨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송씨는 그 뒤로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다시 시작해 1973년 미국에서 종양학 전문의 자격을 땄다.
이 이야기를 듣고 심 교수가 송씨에게 말했다. "꿋꿋하게 공부를 마치고 후배들에게 장학금까지 내놓은 자네가 자랑스럽네."